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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2/02 10:31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도쿄에 가본 건 스무 차례가 넘을 것 같다. 일 때문에, 혹은 그냥 놀러, 한 해에도 두 세 차례 씩 방문해온 도쿄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 옆 동네와도 같이 친근하고도 편안한 도시가 됐다. 처음엔 한꺼번에 수 백 명의 시민들이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시부야 거리의 모습이 엄청난 진풍경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거리에 서면 마치 명동에 온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신주쿠 뒷골목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헤매 다녔지만, 이제 그곳에 가면 단골 음식점을 찾듯 소문난 라멘 가게를 찾곤 한다. 방문할 때마다 도시의 느낌이 시나브로 바뀌어 간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그 공간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젠 새로움을 찾는다기 보다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게 내가 도쿄를 찾는 이유가 됐을 정도다.

그런데 도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익숙하게 다가오는 대상이 하나 있다. 바로 도쿄 타워다. 여기서 익숙함이란 앞서 말한 친근함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심드렁함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길에 언제나 만나게 되는 도쿄 타워를 바라보며 나는 별반 특별한 감흥을 얻은 적이 없다. 그냥 여느 대도시에나 우뚝 서 있을 법한, 그런 도시적 상징물이라는 것 외엔. ‘파리의 에펠 타워를 너무 벤치마킹했군’, ‘여하튼 일본 사람들은 서구적인 걸 좋아해. 저 특징 없는 탑을 왜 만들었을까’ 정도가 도심 안에 불쑥 솟아 있는 그 생뚱 맞은 철탑을 보며 든 생각의 전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에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원제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봤다. 제목과 달리 이 영화에서 도쿄 타워는 별로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거기에 단순한 조형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도쿄 타워는 주인공(오다기리 죠) 아버지가 호기롭던 시절에 찍은 기념 사진의 배경이었고, 이제 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의 병실 창문의 배경이 된다. 아버지의 사진 속에는 지금의 절반쯤 높이까지 세워진 미완성의 도쿄 타워가 서 있다. 마치 저마다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도쿄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의 표상처럼. 과연 넉살 좋고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거기에 있다. 아들과 어머니에겐 불행하게도,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질만큼 성실한 가장은 못됐다. 대신 넉넉한 낙천성을 무기로 홀로 탄광촌의 가난한 삶을 버티며 아들을 뒷바라지해 온 어머니는, 이제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실에 누워 있다. 아들과 어머니는 함께 도쿄타워를 바라본다. 그것은 누군가에는 헛된 욕망, 누군가에는 거짓 없이 순수한 꿈의 표상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꿈은 다르지만, 누구나 같은 바람으로 그 탑을 바라 봤을 것이다. 이루거나 이루지 못함을 떠나, 함께 바라보며 같은 감흥을 공유할 수 있는 매개. 도쿄 타워는 그렇게 이 특별하지 않은 모자의 특별한 이별을 넌지시 굽어보고 있다. 

여행자의 시선은 이방인의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상의 표피에만 머물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여행은 영화가 담지 못하는 삶의 구체성을 목격할 기회를 준다. 반대로, 영화가 여행에서 얻지 못한 통찰을 선사할 때가 있다. 내게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그 공간을 ‘구체적으로’ 살아온 이들의 마음에 비친 도쿄 타워의 이면적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줬다. 그리고 다음 번에 도쿄에 가면, 꼭 한번 그 탑에 올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여행 잡지 '트래비'에 기고한 글입니다.

TAG 도쿄, 도쿄타워, 오다기리죠의 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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