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외부의 압력 때문이었다. FILM2.0 온라인 편집장 시절, 회사는 몇 명의 간부 사원들에게 각자의 블로그 오픈을 지시했다. 경쟁 매체들이 블로그를 통한 커뮤니티 활성화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회사 이름만 미디어2.0이지 기실 2.0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더디게 반응해 왔던 회사로서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불안감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블로그란 게 네티즌들의 나르시시즘적 욕망을 해소해주기 위한, IT 자본의 상업적 전술의 일환이라고 믿었기에, 나조차 블로거로 나선다는 게 영 못마땅했다. 지난해 말 'behind boxoffice'라는 제목의 블로그를 오픈시켜 놓고,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했다. FILM2.0이라는 영화 전문 매체와는 다른 방법론이 필요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나 어떤 것이 블로그적 글쓰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 않을 때는 미처 몰랐던 블로그의 매력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은, 블로그 공간이 방문자들과의 더욱 친밀하고도 유연한 소통과 토론의 장으로써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 순간부터였다. 방문자들의 애정어린 댓글과 관심어린 제언들은 내게 자연스레 블로그적 글쓰기의 방향성을 일깨웠다. 어렴풋하게나마, 나는 블로그가 팩트와 정보보다는 이슈와 관점의 매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므로 블로그 글쓰기는 세상의 제반 현상을 나의 세계관으로 걸러낸 지극히 주관적인, 그러나 타당성 있는 관점을 밀어 붙일 수 있어야 한다. 독특하고도 개성 넘치는, 그러나 설득력 있는 관점들이 하나의 거대한 강물을 형성했을 때, 비로소 객관적인 아젠다가 만들어진다. 모래알이 언덕을 만드는 것과도 같은 블로그 저널리즘의 형성 과정인 것이다.
김경찬 피디, 그리고 팝칼럼니스트 김태훈 씨와 의기투합해 팀 블로그 3M흥업을 오픈하고, 다음 블로거 뉴스에 참여하면서 블로그가 기존 매체를 압도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팀블로그를 오픈한 지 6개월이 조금 지난 지금, 누적 방문자수 400만 명을 눈앞에 두게 됐다. 세상에! 일개 블로그에 우리나라 인구 10명 중 1명이 방문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소수 미디어가 올드 미디어를 능가하는 대중 흡입력을 갖는다는 것은 굉장한 발견이었다.
허나 여전히 장벽은 남아 있다. 블로그를 아마추어리즘의 범주 안에 묶어 놓고 개별 블로그의 브랜드화를 애써 폄훼하려는 시각들 말이다. 여전히 메타 블로그나 포털 편집자들의 간택에 의존해야만 트래픽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불안정성도 한계라면 한계다. 네이버가 전략적으로 오픈한 블로그 '이동진 닷컴'처럼 안정적인 트래픽을 보장 받으며 미디어적 영향력을 확보해낼 수 있느냐가, 3M흥업에게 주어진 다음 과제라 하겠다.
내가 만약 블로그에 인터뷰 글을 쓰겠다며 유명 영화 감독이나 배우를 섭외하면 영화 마케터들은 콧방구도 안 뀔 게 분명하다. 네이버의 든든한 재정적, 트래픽 백업을 받고 있는 '이동진 닷컴'이라면 또 모를까. 이동진 선배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3M흥업도 그에 못지 않은 차별적 퀄리티를 지녔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그러나 처음부터 상품성을 인정 받아 낙점되는 길이 아닌 개척의 길을 택한(나는 이 개척의 과정이 진짜 블로그적인 성장 모델이라고 믿는다) 우리로선 더 다양하고 풍부한 컨텐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할 때 슬쩍 답답증이 몰려 온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우리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싶다. 겉모습만 블로그이지 알맹이는 기존 미디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블로그 특유의 접근 방식으로 기존 매체의 지리멸렬함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대안적 미디어의 길을 끊임 없이 모색할 작정이다. 잘 될른지 모르겠으나 블로거로 참여한 지 1년이 되어 가는 지금, 희미하게나마 그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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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극복하시리라 믿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