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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7/09/29 추석 흥행전, 승자 없는 자중지란
  2. 2007/09/28 명절 연휴에 TV를 꺼야했던 이유
  3. 2007/09/18 잔인할지언정, 사랑은 <행복>이다 (2)
  4. 2007/09/17 [CF 리뷰] 'T' 광고가 부추기는 나르시시즘 (2)
  5. 2007/09/14 클래식 문외한, <카핑 베토벤> 보며 졸도할 뻔 (2)
  6. 2007/09/13 '한국영화 사랑'주의의 허실 (2)
  7. 2007/09/11 당신들의 로맨스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
  8. 2007/09/08 동시상영관의 추억을 알아? <데쓰 프루프>
  9. 2007/09/08 [CF 리뷰] 어디서 본 듯한 SHOW
  10. 2007/09/04 궁극의 첩보 스릴러 <본 얼티메이텀>
  11. 2007/09/04 <디스터비아> 틈새 공략 성공
  12. 2007/09/03 추석 한국영화 3파전, 도토리 키재기

추석 흥행전, 승자 없는 자중지란

박스오피스 헤집기 2007/09/29 09:54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추석 대목 시즌의 치열한 흥행대전은 결국 그렇게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이렇다할 대박 영화가 나오지 않았고, 특히 한국영화들은 대개 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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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사랑>이 맨 앞줄에 있다. 그러나 비교우위다. 주말 사흘과 연휴 사흘을 합친 전국 관객이 110만 명을 살짝 넘었다면, '대박'이라고 장담하기엔 머쓱한 수준이다. 그나마 서울 관객수에선 <본 얼티메이텀>에 약 3만여 명 뒤졌다. 결국 100개 이상의 스크린 우위를 바탕으로 지방에 승부수를 띄운 전략이 먹힌 셈이다.

<사랑>이 그나마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자체의 흡인력이 셌다기 보다 상황 변수가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상황 변수란, 앞서 기선 제압에 나섰던 세 편의 한국영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과 <즐거운인생> <두 얼굴의 여친>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익숙한 흥행 코드로 관습적 흥행을 욕망한, 고만고만한 명절용 코미디에 대한 식상함이라 할 수 있겠다. <상사부일체>가 <두사부일체>와 <투사부일체> 등의 전편들이 세운 업적을 일거에 가려버리는 민망한 스코어(전국 64만 9천여 명)을 기록했다는 것은 그 대표적인 방증이다. 결국 이같은 정서가 '다른' 장르로 들이댄 <사랑>에 반대급부적인 관심을 촉발시킨 셈이다. 자체 흥행 뇌관이 약한 상태에서 반대급부에 의존했으므로 흥행 폭발력이 크지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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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이라는 측면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건 전국 150만 관객을 챙긴 <본 얼티메이텀>도 마찬가지였다. 올 추석 흥행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은 사실상 맷 데이먼이 날고 뛰는 할리우드 산 첩보 스릴러 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영화는 그동안 한국영화의 텃밭이나 다름 없었던 연중 최대 대목 시즌을 맞아 관객들의 '표심'을 사로 잡는데 실패했다. 이건 올 상반기의 거듭된 부진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해온 한국영화 산업 전반에 또 한번의 뼈 아픈 타격이 될지도 모른다.

명절 연휴 코미디 불패 신화의 유통기한이 다가오고 있다는 조짐은 지난해 추석 <타짜>의 빅히트로 어느 정도 예고된 바 있다. 그런데도 기획자들은 '추석엔 웃겨야 산다'는 낡은 잠언을 포기하지 못했다. 관객들은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로 화답했다.

추석 연휴 주요 영화 흥행 스코어
*괄호안은 서울 스크린수

작품명                    스크린수            서울 주말         서울 연휴            전국누계
============================================================================
사랑                        400(85)               113,700           130,600              1,103,000
본 얼티메이텀           303(84)               132,000           144,000              1,509,000
권순분여사납치사건   363(76)                 68,000           108,000              1,208,000
인베이전                  173(53)                 59,200            63,900                358,100
즐거운인생               330(78)                 58,000            90,000                784,000
상사부일체               306(64)                 55,100            72,000                649,400
두 얼굴의 여친          297(58)                 26,800            29,000                663,800

TAG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두 얼굴의 여친, 명절 극장가, 박스오피스, 본 얼티메이텀, 사랑, 상사부일체, 즐거운 인생, 추석 시즌, 흥행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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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에 TV를 꺼야했던 이유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09/28 00:01
명절 연휴에 고향 갈 일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은 하릴없이 TV를 켜놓고 이른바 '재핑'이라는 걸로 소일하기 마련이다. 이 채널 저 채널 옮기다 보면 명색이 공중파라고, 그나마 얼굴 좀 아는 연예인들이 떼로 몰려 나온 명절 특집 방송이라는 걸 앞다퉈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세 편의 공중파 특집 프로그램을 보다가 질려서 TV를 꺼버리고 말았다. 하나는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에 고무(?)돼 학력을 주제로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 서경석이 사회자로 나선 겉모양부터 일단 신기해 보여 조금 봤는데, 고등학교를 중퇴한 연예인이 나와 학력보다 중요한 게 실력이란 걸 자신의 체험담을 통해 얘기하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좀 가다 보니 가관이다. 거기 또다른 게스트로 나오신 고승덕 변호사. 서울대 법대 출신에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패스, 예일대와 하버드대 석사라는 엄청난 학력의 소유자를 모셔다 놓고, 한편에선 학력보다 실력이니 어쩌구 하더니, 한쪽에선 진짜 학력의 진수가 어떤건지 얘기하고 있다. 위조하지 않고 진짜로 학력을 쌓은 그는,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듯. 이런 자 앞에서 부끄러워 하라. 썩어 빠진 신정아여,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걸까? 수박 철도 지났는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박 겉을 단체로 핥고 있는 토론 프로였다.

변호사로서 고승덕의 수임률이나 승률을 우리는 알길이 없다. 그저 그가 고시 3개를 패스하고, 대한민국 국민까지 다 알고 있는 미국 명문대 학위만 3개를 가지고 있는 유명인이라는 것 밖에는. 애초에 교수를 꿈꿨다는 그 양반이 왜 그리 많은 명문대 석사 학위를 필요로 하게 된 건지 알 길이 없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는 학력 중심 사회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고, 또 자의든 타의든 그걸 바탕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에게 본질적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렇게 공부가 깊은 법조인으로서, 얼마나 억울한 사람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해 오셨냐고.

그러고 보니 사회자로 나온 서경석에게도 아무도 이렇게 묻지 않았다. "당신은 말했죠. 내가 만약 학력 덕 봤다면 이 정도에서 머물렀을 것 같냐고.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 보죠. 당신이 그나마 서울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 별로 웃기지 않는 개그 실력으로 사회하는 수준까지 갔겠냐고."

보다보니 오바이트가 쏠려서 후딱 채널을 돌렸더니 추석 특집 스타 골든벨이다. 개그맨들 대거 앉혀 놓고 사회자 지석진은 얼마나 잘났길래, 개그맨들 얼굴 품평으로 웃기려 든다. 그래서 누가 더 못생겼나 시합하고 있다. 하라는 퀴즈는 안하고 프로그램 시작하고 나서 얼추 10분 이상 서로의 외모들을 가지고 오락가락이다. 오지헌이 스스로 못생겼다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하니, 뒤에 있던 여자 연예인이 한마디 한다. "나도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참 놀고 계시네요." 그 멘트로 웃기려 했다면 당신이야말로 놀고 계셨다.

이쁜이들한테 상투적인 상찬을 퍼붓는 것만이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다. 외모를 가지고 사람을 놀리는 것도 거꾸로 외모지상주의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악질 중의 악질이다. 공중파 TV는 버젓이 이런 짓을 저지른다. 휘영청 한가위 달 보며 엉뚱한 소원 빈다. 조상님이여, 악질 프로그램의 공해를 해결해주시압.

연휴 방송에서 가장 불쌍한 이들은 아나운서들이다. 어나운싱(알리기)하려고 취직했다가 쇼를 강요당하니 그들은 명절만 되면 쇼걸이 된다. 추석날 오후에 그들은 저마다 섹시한 자태를 뽐내며 개그맨 가수들하고 짝짓기 놀이 하고 있다. 학창 시절에 경향적으로 좋은 대학 다니며 아나운서 되려고 공부 깨나 하셨을텐데, 처연하고 측은하다. 피디님들의 눈에 그들의 학력은 하등 중요할 이유 없나 보다. 이 대목에선 얼마나 귀엽고 예쁘게 보이느냐만 중요한가 보다.

그렇다고 연휴 방송이 마냥 후진 건 아니다. 가끔 기특한 게 있으니 그건 평소와 달리 셧더마우스하시고 세곡씩 연달아 음악만 트는 라디오의 BGM 특집 방송이다. 차라리 일년 내내 이런 특집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 결심한다. 다음 명절 연휴엔 결코 TV를 켜지 않겠다고.
TAG TV, 개그맨, 고승덕, 서경석, 아나운서, 연휴, 외모지상주의, 추석 특집 프로그램, 학력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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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할지언정, 사랑은 <행복>이다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09/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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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자 애니 프루는 퓰리처상을 받은 그의 역작 <시핑 뉴스>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내고 있다.

"물이 빛보다 먼저 생겼을 수도, 뜨거운 염소 피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깨질 수도, 화산이 차가운 불을 뿜어낼 수도, 바다 한가운데에 숲이 나타날 수도, 게 위로 손만 가져가도 그 손그림자에 게가 잡힐 수도, 매듭 속에 바람이 갇힐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도 가끔은 있으리라."

그러므로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어쩌면 고통과 불행이 함께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사랑은 상처를, 마침내 찾아올 권태를, 그리고 이별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또 그 지긋지긋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온몸이 사랑의 감정에 달뜨기 시작했을 때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전에 받았던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는 기적, 누군가가 무작정 아무 이유 없이 좋아지는 기적, 그 찰나의 기적에 거역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허진호의 영화 <행복>은, <봄날이 간다>나 <외출> 등 그의 전작들이 고수해오던대로 고통과 불행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봄날은 간다>에서 일갈했듯, 사랑은...변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남녀 주인공들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깊이 패인 상처 때문에, 혹은 지금 앓고 있는 병 때문에 존재의 끝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싹트는 순간의 기적에 대항할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감에 만취된 그들 역시, '고통이나 불행이 없는 사랑이 가끔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잔인한 이별의 순간은 어김 없이 찾아온다.

허나 영화 <행복>에 방점이 찍히는 지점은, 이별이 아닌 것 같다. 허진호는 두 남녀가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유별날 정도로 행복한 표정에 집중한다. 사랑 때문에 상처 받고, 사랑 때문에 치유받고, 또 다시 그 사랑 때문에 상처 받는 게 인간사라면, 이번에 그는 치유의 순간에 피어나는 절정의 행복을 묘사하는 데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 결혼한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별이 있어서 사랑은 잔인한 행복이다. 그런데, 그것도 행복이다. 은희(임수정)는 영수(황정민)에게 용감하게 말한다. "우리 같이 살래요? 나중에 어떻게 되든." 나중에 어떻게 되든, 지금 벅차게 행복을 껴안는 은희야말로,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다. 그래서 나는 이별의 순간에 시골길을 내달리며 울부짖는 은희의 처연함보다, 수줍고도 달뜬 표정으로 영수의 입맞춤을 맞이하던 그 눈부신 미소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눈에 밟혔다.


[그래서? 영화가 볼만 하다는 얘기야?]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봄날은 간다>와 <외출>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그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친절하게 빠진 영화라서, 오히려 살짝 신파적이라는 냄새까지 풍긴다. 어떤 면에서 그동안 봐왔던 허진호의 색깔이 약간 탈색됐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좋게 말하면 그도 성숙한 것일 수도 있다. 대중영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을에 볼만한 꽤 괜찮은 멜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황정민과 임수정의 연기도 예쁘다.
TAG 영화 리뷰, 행복, 허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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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진이 2007/09/22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쨌거나(?) 보아야 할 것 같군요. 두 배우도 너무 좋고.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은 하나 빼고 모두(랄 것도 없지만) 보았는데, 바로 전 작품은 두 배우 '때문에' 안 봤었거든요. 나중엔 귀찮아져버리기도 했고..

    아무튼 글을 참 영화 안 본 상태에서도 가장 읽기 좋게 쓰시는 것 같아요. 원래 그 작품 꼭 볼 거면 일부러 관련글을 보지 않는 편인데 (그러다가 읽고 후회하지만ㅎ) 오히려 반대로 최광희님 글은 딱 적정선의 (영화 보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보만 제공하면서도 아주 커다란 흥미를 (더더욱 꼭 봐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두번째사랑도 그랬었고, 또 즐거운 인생은 후에 글을 보았지만 남들 잘 안하는 '뻔하지 않은' 얘기로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해주시구요.

    참, 즐거운 인생 쓰신 글 이번엔 저쪽 3M흥업 주소로 제 글속에 링크는 했는데 따로 트랙백은 달지 않았어요. 단순 링크기도 하고 저번같은 경운 그냥 링크했음을 알려드리고자 보냈던 거라서,,^^ 링크를 저쪽으로 한 건 이왕이면 공식(?)적으로 알려지는 곳이 거기가 더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ㅎ 연휴 잘 보내세요^^

    • cinemAgora 2007/09/23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쪽 블로그에는 요즘 댓글이 뜸한데 부러 이곳에다 댓글 달아주시니 더 감사합니다. 제 글이 취향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적정한 정보만 주고 한명의 관람자로서 강추와 비추의 태도를 확실히 밝히는 게 프리뷰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는데, 그런 의도를 읽어주시니 황공할 따름입니다. 뻔하지 않으려 노력은 하는데 갈수록 뻔해져서 요즘 반성 많이 하고 있습니다. 관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CF 리뷰] 'T' 광고가 부추기는 나르시시즘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09/17 10:38

얼빠지게 멋있게 보이기 '완전정복'

이 여자에게 휴대폰을 걸어온 건 분명 남자일 것이다. 유추컨대, 그녀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헌데 이제 그녀에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에서 오이 마사지를 하거나 오랫동안 정성스레 립스틱을 바르거나 마스카라를 하는 따위의 일에 신경 쓰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부담이 더해졌다. 언제 걸려 올지 모를 영상 전화에 자신의 생얼을 노출해야 할 부담. 그것이 엄마도 동생도 친구도 아닌, 남친이라면!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비상 상황에 즉각 대처할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 주변의 사물이나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떻든 오직 프레임 안에 잡힌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예쁘고 섹시해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재빠르게 눈꼽을 떼고 침을 닦아내며 머리를 다듬는 동작을 숙련시켜야 하는 건 기본이고, 생얼을 가리기 위해 입김을 액정 화면에 불어 뽀샵 효과를 내거나, 선풍기를 소품으로 특수효과까지 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휴대폰 벨 소리 하나에 그녀의 행동은 참 이상해진다.

집단 생쑈 vs 나홀로 생쑈

KTF의 '쇼를 하라' 광고 시리즈가 '집단 생쑈'를 통해 시선을 끈다면 SKT는 이른바 '영상통화 완전정복' 시리즈로 맞불을 놓고 있다. '쇼를 하라'가 서비스의 혜택을 얻기 위해 공중 장소에서 각종 기기묘묘한 쇼를 펼쳐 보이는 것을 서슴지 않는 인물들이 컨셉이라면, 완전정복 시리즈는, 한 젊은 여성이 영상 통화에서 자신을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한 각종 잔기술을 부리는상황을 마치 어떤 생활의 팁이라도 가르쳐주는 듯한 컨셉으로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요 없어? 자랑할 수 있는데도?

'완전정복 시리즈'는 영상 통화 서비스의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제 1의 원동력이 '필요'보다는 '과시'이며, 결국 소비자의 보여주기 욕망, 즉 나르시시즘에 근거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서비스의 광고 초창기에 써먹었던 '필요의 강조', 즉 멀리 떨어진 애인의 식사 메뉴를 대신 주문해 주는 일이나 부인에게 사줄 속옷을 비쳐 보여주는 것 따위의 광고 컨셉은 오히려 핀트에서 살짝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영상'은 보는 것이자 보여주기이다. 다른 이를 비쳤을 때는 관음증적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이자, 나를 비쳤을 때는 자기 도취의 도구로 치환되기 일쑤다. 그러므로 영상통화 서비스 광고가 (일견 우스꽝스러운) 도취의 풍경조차 사랑스럽게 포장하는 단계로 넘어왔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쩌면 때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정복' 광고는 그 나르시시즘의 풍경을 희화화해 놓고, 짐짓 요가 동작이라도 교습하듯 시침 딱 떼며 당신은 그동안 디카에게만 헌사했던 얼짱 각도를 이제 영상 통화 서비스를 통해 남친에게 생중계로 전송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광고에 따르면, 우리는 일상의 어떤 순간에도 전광석화와도 같은 동작으로 최대한 예쁘고 섹시한 자태를 급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어떤가. 말씀이 거친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면, 한마디로 '지랄 얘엠병'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광고 속의 여성이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남친의 액정 속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로 비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사실은, 거꾸로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지랄 얘엠병' 상황까지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푼수 짓도 미인이 해야 먹힌다는 것은, 이미 'SHOW'의 서단비가 입증하지 않았던가.

멋있게 되기가 아닌 멋있어 보이기

본질적으로, 광고 매체는 결코 멋있어 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만 멋있게 '보이는' 방법만을 가르칠 뿐이다. 더한 문제는, 그 멋있게 보이는 데 혈안이 된 이들이 대부분 여성들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광고 속의 여성은 더 멋있어 보이는 다른 여자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것을 넘어 이제 멋있게 보이기 위한 '헛지랄'을 개의치 않는, 표피적인 가치를 숭앙하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여성성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멋있게 보이는 것만이 중요해진 시대를 디카가, 휴대폰 영상통화 서비스가 앞장서 이끌고 있고, 광고는 그 처연한 시대 정신에 유머라는 토핑을 살짝 얹어 뽀샵 처리를 해준다. 오늘도 길거리에는 멋있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차고 넘친다. 저 중에 진짜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진다.
TAG SKT, T, 광고, 광고 이야기, 영상통화, 영상통화 완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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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하(전지은) 2007/09/27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과연 명쾌하고 시원한 리뷰였습니다.

    '여성성에 대한 명백한 모욕' 이게 정답이었군요.
    몇 번 광고를 보면서 왠지 기분이 불유쾌했었는데...

    지긋지긋한 셀카질로 도배된 싸X를 하던 분들에게는 저정도는 이미 정복되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더랍니다. 크크

    • cinemAgora 2007/09/2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교적 한적한 동네까지 오셔서 살가운 댓글을 남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클래식 문외한, <카핑 베토벤> 보며 졸도할 뻔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09/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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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에 관해서만큼 나는 쥐뿔도 모르는 무식쟁이다. 모짜르트니 바하니 헨델이니 베토벤이니 주워 들은 건 적지 않지만, 들어도 어느 음악이 누구의 것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한때는 클래식에 필이 살짝 꽂혀 라디오 채널을 종일 고전 음악 프로그램에 맞춰 놓은 적도 있긴 했다. 그래도 "아, 음악 좋다"하고 말았다. 저게 누구의 어떤 곡인지, 어떤 배경과 역사성을 지닌 곡인지 알아보고 싶은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니 스스로 딱한 지경이었다.

허나 운명이니 월광이니 비창, 전원과 같은 소나타나 교향곡 제목을 들으면 적어도 공통분모가 베토벤이라는 것 정도는 알 깜냥이니 10월 11일 개봉하는 <카핑 베토벤>이라는 영화에 슬쩍 눈길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눈이 깊은 배우 에드 해리스가 <폴락>에 이어 또 얼마나 괴팍한 예술가의 영혼을 제대로 연기했나 보고 싶기도 했고. 언론 시사회를 대한극장에서 한다니 음향이 제대로겠구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드림걸즈> 이후 변변한 음악영화 만난 기억이 까마득한데 생경한 클래식이라도 오랜만에 귀 좀 즐거워 보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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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라면 젠체하는 꼰대들의 우아뻥 취향을 만족시키는 부르조아의 갇힌 예술이라는, 록 지상주의의 도그마에서 여전히 완전히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실은 지지리도 무딘 감성의 낼 모레 마흔 아저씨, 오늘 이 영화 보다 졸도할 뻔했다. 영화 중간의 9번 교향곡 '합창'의 초연 장면 때문이었다.

이미 귀가 먼 베토벤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의 초연을 앞두고 지휘대에 올라 템포를 놓칠게 될까봐 두렵다. 그의 악보를 손으로 옮겨 쓰는 일을 하는 '카피스트'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가 연주대 중간에 자리한다. 영화 속의 안나 홀츠는 가상 인물로 음악학교 우등생이자 '마에스트로' 베토벤의 카피스트로 일하며 천재성을 인정 받은 여성 음악가로 등장한다. 베토벤은 이제 그녀가 펼치는 대리 지휘에 의존해 그 자신은 듣지 못하지만 그의 손놀림에 의해 완성될 걸작을 펼쳐 보일 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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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카메라는 귀먹은 베토벤의 안내자를 자처하다 그 자신 완전히 곡에 몰입한 무아지경의 안나와 연주자들 사이에 숨은 그녀를 지휘대에서 슬쩍 슬쩍 바라보는 베토벤의 손놀림을 번갈아 보여준다. 춤을 추듯, 서로를 애무하듯, 아니면 서로가 공감한 천상의 음악에 만취해 흐느적대듯. 안나는 베토벤의 악보를 카피했지만, 이제 베토벤이 순수 열정의 화신 안나의 매혹을 카피하고 있는 셈이다. 음악을 매개로 교감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가장 영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황홀한 장면에서, 나는 숨이 가빴다.

절정에 이르러, 대규모 합창단의 '환희의 송가'가 힘찬 하모니로 공연장을 압도한다. 마치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올라가는 듯한 힘, 그것은 신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예술가의 발악적 기상처럼 들린다. 이 즈음에 이르자 굵고 짜릿한 에너지가 꾸역꾸역 내 가슴 위로 치받아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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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카핑 베토벤>은 내게 감동적인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뒤에도 9번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베토벤의 말년은 신의 선물처럼 그에게 다가와 또 다른 영감을 안겨준 것으로 설정된 안나 홀츠라는 가상의 여인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재연된다. 듣는 이의 가슴을 쾅쾅 울리고 마는, 땅을 너무나 사랑해 신과의 합일을 앙망한 베토벤의 열정이 당대의 연주회장에 앉아 있듯, 고스란히 내 가슴에도 카피됐다. 한편으로, 추잡한 욕망에 의해 예술이 강간당하고 있는 계절에 예술의 본원을 상기시키는 이 영화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TAG 9번 교향곡, 베토벤, 안나 홀츠, 에드 해리스, 카핑 베토벤,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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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하(전지은) 2007/09/27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사회도 신청하고 다이어리에 개봉일 체크해놓고...
    꼭 보고 싶은 영화^^
    아마데우스만한 '베토벤'의 영화는 아직 없는 것 같은데...
    정말 기대됩니다.

    • cinemAgora 2007/09/28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적으로 <아마데우스>에 필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음악적으로는 베토벤의 열정(?)을 감동적으로 추체험해보실만 한 작품입니다.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영화 사랑'주의의 허실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09/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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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달라고? 뭘, 어떻게?
한판 승부 패러다임에 갇힌 한국영화 주류 담론

“한국영화 요즘 많이 어렵습니다. 관객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한국영화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지난 여름까지 한국영화 시사회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인사말이다. 제작자든, 감독이든, 배우든 한국영화의 위기를 성토하며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읍소했다. 지난 3월 근육질 블록버스터 <300>이 불을 지핀 할리우드의 맹공세가 7월의 <트랜스포머>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으니, 사실 올 상반기의 한국영화는 죽을 맛이었다. 관객이 안 들고 투자가 얼어 붙는 악순환 속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을 애걸하는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의구심이 생긴다. 할리우드 영화를 사랑하지 말라는 얘긴지, 할리우드 영화만큼 한국영화도 사랑해 달라는 얘긴지, 아니면 할리우드 영화 빼고는 다른 나라 영화를 다 사랑하는데, 그 중에 한국영화도 포함시켜 달라는 얘긴지 헷갈리다. 구체성이 결여된 채 뭉뚱그려 사랑해 달라는 말에는, 관객들의 관람 선택에 있어서도 애국심의 작용을 바라는 은근한 바람이 섞여 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검증된 흥행 코드를 적당히 뒤섞어 놓고 대충 안정적인 흥행을 바라는, 목불인견의 기획영화들에게조차, 단지 그것이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지지와 관심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지난 여름 <트랜스포머>로, <해리포터>로, <다이하드 4.0>으로 달려간 수 백만 명의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한국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정당화하는 분위기는, 특히 언론에 의해 자주 부추겨져 왔다. 매달 발표되는 한국영화 점유율은 그 편리한 근거로 자주 활용되곤 한다. 언론들에 의하면 한국영화는 점유율 50%를 넘기면 다행이고 그 이하로 떨어지면 위기다. 또 할리우드 영화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 한국영화는 큰일 난 거다. 그러다가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 한국영화 부활의 신호탄이란다. 그리곤 예의 화려한 부활이다. 언론에 의해 한국영화는 일년에도 몇 차례씩 죽었다가 살아난 메시아가 된다. TV 영화 정보 프로그램의 상투적 멘트도 이 패러다임에선 예외가 아니다. “관객들의 사랑에 힘입어 불쑥불쑥 커가는 한국영화를 보니 흐믓한 마음이 듭니다.” 이런 말, 이젠 아주 지겹다.

얼마 전에 한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섭외를 받았다. <화려한 휴가>와 <디워>라는 영화의 쌍끌이 흥행이 한국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는 거였다. 출연할 코너의 틀이 벌써 그렇게 짜여 있으니 방송에 나가 할 말이라곤 앵커의 예정된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예, 그럴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영화의 침울한 분위기에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따위의 하나마나한 용비어천가를 지껄이는 것 뿐이었다. 방송에 나가 소개하고 싶은 숱한 걸작들, 극장에서 외면 받고, 불법 다운로드의 저주로 인해 부가판권 시장에서조차 설 땅이 없는, 그 많은 주옥 같은 영화들을 소개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스크린 독과점과 다양성 확보에 대해 말할라 치면 골치 아프다고 손사래부터 친다. “시청자들 그런 거 관심 없어!” 내가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불려 나갈 일은 프로그램 말미에 양념처럼 끼어든 ‘한국영화 선전’ 소식을 전할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관객들이 이를 테면 <본 얼티메이텀>과 같은 걸작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극을 얻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와 같은 영화는 또 어떤가. 앞서 개봉했던 <굿 셰퍼드>나 <뜨거운 녀석들> 등 올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들 가운데서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맹렬하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나는, 영화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임을 잊고 반 한국영화적 언행을 일삼는 게 되는 걸까? 지금의 분위기에선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안 그러면 모순이 되니까.

요컨대, 한국의 영화문화를 둘러싼 주류적 담론은 여전히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의 한판 승부라는 대결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현실이 그러할진대, 그것을 외면하란 말이냐고 따질 분도 계실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론이 문화적으로 열려있지 않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이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한국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호소하는 문화적 애국주의가 영화 문화의 획일화라는, 다양성 결여의 살풍경을 슬쩍 가리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톡 까놓고 말해보자. 관객은 <디 워>를 사랑했을지언정, <좋지 아니한가>와 같은 수작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둘 다 한국영화인데도 말이다. <화려한 휴가>를 사랑했을지언정, 비슷한 시점에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극찬을 들은 <기담>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둘 다 사랑스러운 한국영화인데도 말이다. 흥행 양극화라는 잔인한 현실, 흥행 양극화를 부추기는 더욱 잔인한 배급 시장의 반문화적 약육강식 논리가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데도, 한국영화는 8월 이후 욱일승천의 기세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니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언론은 다시 ‘한국영화 만세’ 모드에 돌입했다. 통탄할 노릇이다.


비단 흥행 시장뿐이랴. 하물며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싸움에서도 ‘한국영화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그 실효를 상실한 지 오래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일부 영화인들이 보여준 이중적인 행태를 볼모로, 스크린쿼터 사수의 정당성에 ‘이유 없음’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토록 한국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외치더니 당신들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했느냐는 반격이다. 한국영화 전성기에 편승해 얻어진 유명세에 힘입어 호의호식하거나 앞뒤 안 맞는 모순적인 언행을 일삼는 무리들로 순식간에 전락해 버린 것이다. 실상이 이와 다를지언정 한번 급속 냉각 모드에 들어간 여론은 쉽게 바꾸기 힘들다. 냉정한 현실이다.

어쩌면 맹목적인 한국영화 사랑 캠페인이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었던 부작용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캠페인에는 우리는 왜 한국영화를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며, 그에 앞서 우리가 영화를, 그리고 문화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총론을 건너 뛰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적 체험 행위란 결국 다름과 차이를 체득하고 존중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바라볼 때 얻는 쾌감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세계의 논리에 대응한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언어를 통해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다름을 존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와 동시에 외부의 문화가 갖는 다름을 체험할 권리도 우리에겐 있다. 그 생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의 한정된 인식이 확장되는 짜릿한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이유로 한국영화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영화만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은 다양성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읍소하는 영화인들은, 미국에서 온 저 영화와 일본에서 온 이 영화, 태국에서 온 그 영화도 한꺼번에 사랑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좋은 영화를 사랑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영화가 침체에 빠진 것만큼이나 좋은 영화들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해야 한다. 개선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지금, 이런 말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지난 몇 해 동안 적지 않은 논객들이 문화 애국주의의 함정을 경계하며 다양성의 본질을 상기하려 애썼지만 정책 책임자나 산업의 이해 당사자들에겐 순진한 말장난으로 들렸을 뿐이다. 위정자는 한국 영화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데 지금처럼 친절하게 복무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영화라는 대표 선수는, 할리우드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홈그라운드에서만 드라마틱한 승부전을 펼치며 국민들의 역사적 문화적 콤플렉스를 대리 해소해줘야 한다. 그것을 중계하고 있는 언론이나 다양성 담론이 숨쉬지 못하는 틈을 타 독점을 공고히 하며 이윤을 부풀리는 대규모 영화 자본가들에게 어떤 영화가 시민의 영혼에 거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설 자리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믿지 않는다. 오늘도 여전히 한국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는 그들의 진심을.

* 9월 13일자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 기고한 글입니다.

TAG 다양성, 문화,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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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하(전지은) 2007/09/27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역시 글의 힘이란 이런게 아닐까 싶네요.
    광희님의 글을 읽으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면서 '그래 내얘기가 저거야'라며
    얕은 식견을 가진 제게 그나마 가진 생각이라도 정리하게 만들어주시네요.
    호호. 전에 '스크린쿼터'에 대한 자조적입장을 보였다
    친한 사람들과의 자리였는데도 완전 당황할 만큼 혼났던 -.- 기억이 납니다. 광희님의 글을 읽고 힘좀 얻어갑니다. =3

    • cinemAgora 2007/09/28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넵, 힘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당신들의 로맨스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09/11 12:27
신정아 씨와 변양균 씨의 로맨스를 보며

불륜이란 건 1부1처 결혼제도의 아킬레스건일까? 아니면 빛바랜 사랑의 그늘에 움트는 본원적 결핍의 산물일까. 혹은 제도에 갇힌 은밀한 욕망의 정당한 해방구일까. 뭔지 모르겠지만 이 정체모를 일탈 감정 혹은 행동이 문명 세계의 제도화한 인간들을 끊임 없이 괴롭혀 온 것만큼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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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잠재된 욕망을 건드리는 영화라는 장르가 이 핫한 소재를 놓칠 리 없을 터. 불륜 로맨스는, 수도권에 산재한 저 숱한 러브호텔의 수만큼이나 자주 애용돼 온 영화적 소재였다. 내가 본 영화 가운데 최고의 불륜 로맨스 영화는 데이비드 린의 <밀회>(Brief Encounter, 1945)였다. 중산층 가정의 모범적인 유부녀 로라 제슨과 역시 유부남이자 의사인 알렉 하비가 기차역에서 '우연한 조우'를 한다. 플랫폼에 기차가 지나가면서 로라의 눈에 티끌이 들어갔다. 의사는 그의 눈에 입김을 불어 티끌을 빼내 준다. 짧지만 짜릿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조우다. 게다가 에로틱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과연 두 사람은 시시 때때로 만나 밀회를 즐긴다. 그리고는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할 욕망을 뿌리치지 못하고 알렉의 거처로 스며든다. 결정적인 순간, 얄궂게도 알렉의 룸메이트가 들이닥친다. 이 점잖은 남녀가 베란다를 통해 거처를 탈출해야 하는 상황, 추레하고도 황망한 수치심이 여자의 얼굴에 가득하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위로할 길 몰라 역시 안타까울 뿐이다.

이 아름답도록 처연한 장면은, 몇해전 개봉했던 허진호 감독의 <외출>에서도 비슷하게 재연됐다. 이 영화는 배우자의 불륜을 알아버린 두 남녀 사이에 또 다른 불륜의 씨앗이 싹트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데, 두 사람의 불륜은 상대방의 배우자들이 앞서 저질렀던 불륜이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매끈한 외모와 더불어 로맨스라는 감정의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정당화가 지나치다 싶어 오히려 불편한 영화였다.

불륜 로맨스 영화는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이후 한국 멜로영화의 하나의 트렌드가 되다시피했다. 올초 나왔던 <바람피기 좋은 날>은 아예 결혼 제도 바깥에서의 사랑에서 어떤 쾌감을 발견하려 애쓴다. 최근 나온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지 않은 많은 기혼남녀들에게, 두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행복이라면 현재를 버리고 그 길로 달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은근히 부추긴다.

요컨대, 대부분의 불륜 로맨스 영화들은 그 감정을 어쩔 수 없다고 얼버무리거나 혹은 찬양한다. 말하자면 로맨스는 죄가 없다는 얘기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도대체 이 불가해한 감정이 스며든 상황을 어떻게 단죄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남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불륜 로맨스를 한껏 아름답게 묘사하면서도 은근슬쩍 도덕적 안전장치를 장착했던 이전의 영화들과 달리, 최근의 영화들은 (영화 바깥에선 도덕적 안전장치를 위한 적당한 제스처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도 영화 안에서만큼은 무기력한 파국이 아닌, 능동적 선택의 풍경을 포착한다. 불륜 로맨스에 대한 시대의 수용력이 이 정도가 된 셈이다.

학력 위조 파문으로 도마 위에 오른 신정아 씨와 변양균 청와대 기획실장 사이에 어떤 로맨스가 있었는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남의 사생활에 감놔라 배놔라 할 입장도 못되고 또 그래서도 안되지만, 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로맨스가 로맨스로 끝나지 않을 조짐이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러나 많은 영화들이 묘사한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에 이 케이스가 포함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유가 있다. 눈에 든 티끌을 빼내며 시작된 소박함이라고 보기에 그들의 로맨스에는 감정 외의 것들이 너무 많이 개입한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 감정 외의 것들이 로맨스를 위해 차출된 것인지, 아니면 로맨스가 감정 외의 것들을 위해 차출된 건지 검찰 수사 과정을 더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아름다운 솜씨(美術)를 매개로 조우했던 그들의 로맨스는 전혀 아름답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다시, 로맨스는 죄가 없다. 하지만 가끔 로맨스의 당사자들이 로맨스를 모욕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이야말로 불륜 로맨스가 내포한 가장 잔인한 함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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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상영관의 추억을 알아? <데쓰 프루프>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09/0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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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단짝 친구와 나는 봉천 사거리의 초원극장과 관악극장을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어김 없이 찾았다. 거기에 가면 단 돈 천 원을 내고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데다, 필이 제대로 꽂힌 영화의 경우, 그냥 공짜로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 페이스>에 열광했고, <베티 블루>의 잔인한 사랑에 치를 떨었다. <천녀유혼>을 볼 때의 설렘은 또 어땠나. 왕조현이 첫 등장하자마자 저마다 숨겨 온 아버지의 카메라를 일제히 터뜨린 남학생들 사이에서, 침만 꼴깍 삼켰던 그곳, 동네마다 있었던 동시상영관이었다.

70~80년대 동시상영관은 거의 재개봉관의 역할을 담당했다. 로버트 태권 브이가 봉천극장에 왔을 때만 해도 동네 꼬마들은 당시만 해도 극장과는 까마득하게 멀다고만 느껴졌던 우리 집 앞까지 줄을 섰다. 개봉관은 있는 집 애들만 찾는 별세계인줄로만 알았던 우리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동시상영관 초대권을 얻기 위해 떡볶이를 사먹었고, 열심히 개구멍을 찾아 다닌 끝에 옆 건물 옥상에서 극장 화장실 창문으로 뛰어 넘어들어가는, 아슬아슬한 성룡적 액션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악한 영사시설은 틈만 나면 프린트를 끊어 먹었다. '부르륵'하며 스크린이 흰색으로 변하면, 돈 천 원을 내고 들어왔을지언정 엄연한 손님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우~ 천 원 내놔라~!" 비 내리는 화면, 뚝뚝 끊기는 편집, 지글거리는 음향이 짜증을 불러 일으킬지언정, 그것은 그것 자체로 동시상영관 특유의 문화적 공기를 형성하며 함께 든 관객들간의 묘한 유대감을 만들어내곤 했던 것이다.

동시상영관에 간다는 것은, 뭐랄까, 어른들이 할지 말라고 하는 금기를 몰래 저지르는 것과 같은 묘한 흥분을 안겨줬다. 일종의 하위문화적 쾌감이랄까. 동네 만화방에 가서 심야에 몰래 트는 홍콩산 포르노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 이런 심리를 기가 막히게 알고 있는 극장들은, 이를테면 <죠스>를 틀 때, <뼈와 살이 타는 밤>같은 야시시한 영화도 함께 틀어 리비도가 넘쳐 흐르는 동네 꼬마 녀석들을 불러 모았다. 미성년자 출입금지 영화라지만, 노골적으로 학생들의 출입을 막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므로, 우리가 할 일은 다만 학생 주임이 떴을 때를 대비한 퇴로를 미리 확보해 놓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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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골 때리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인 쿠엔틴 타란티노에게도 (물론 모르는 사실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종류의 생생한 추억이 있었다는 것을 영화로 확인하는 것은 나로선 신기하다. 그가 미국의 동시상영관인 그라인드하우스를 들락거리며, 싸고 자극적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에 열광했다는 사실은, 태국 올로케이션이라는 찬란한 카피를 달고 한국형 B급 영화의 진수를 선보였던 <늪에서 늪으로>(이 영화에는 한국영화 최초의 헬기 신이라고 자랑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것이 모형 헬기라는 사실이 너무나 확연했다.) 를 보던 기억을 상기시키며, 갑자기 우리가 같은 세대의 문화적 공기를 호흡했다는, 유대감이 마구 생기려고 할 정도다.
 
고로, 의도적으로 그라인드하우스 영화의 조악함을 재현한 <데쓰 프루프>는 내겐 끔찍하게 귀여운 영화였다. 중복 편집에 릴 미싱, 비 내리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이 사람은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를 소비하고 향유했던 시절의 열정을 복원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지만, 영화 막판의 자동차 추격신에 이르러, CG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리얼 스턴트 방식으로 찍은 그 둔탁한 액션 장면에서 그라인드하우스 영화의 가난한 진정성에 바치는 타란티노의 헌사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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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최고급 시설로 무장한 멀티플렉스의 안락한 좌석에서 매끈하고도 현란하게 빠진 디지털 영상에 중독된 우리에게, 그는 부러 조악한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 가득찬 옛것을 그의 방식대로 복원해 놓고 즐겨보자 한다. 그리고 그 시절의 영화 뿐 아니라 그 시절의 가난한 영화보기가 우리에게 주었던 일탈적 쾌감을 다시 느껴보자 한다. 바텐더 워렌으로 직접 출연한 그의 대사, "워렌이 권하는 것은 닥치고 원샷!" 그렇다. 타란티노가 만든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일단 닥치고 원샷이다. 그는 언제나 그 자신감에 상응하는 '물건'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사족, 북미에선 이 영화와 함께 동시상영된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플래닛 테러>를 함께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노릇이다. <플래닛 테러>가 개봉되는 11월에라도 애초의 의도대로 두 영화를 묶어서 상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TAG 그라인드하우스, 데쓰프루프, 동시상영관,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 쿠엔틴 타란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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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리뷰] 어디서 본 듯한 SHOW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09/0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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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영상은 대중에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딜가나 시선을 사로 잡는 CF는 쏟아 붓는 물량의 크기만큼 인구에 회자되며,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위력을 넘어 하나의 강력한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 나간다. 얼마전 한 TV프로그램에서 '배우자가 말려도 데이트하고 싶은 연예인'을 조사했더니, 그 순위가 대체로 해당 연예인의 CF 활동의 양과 비례했다는 점은 그같은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나 TV드라마에 들이댔던 평가의 잣대를 이제는 CF에도 적용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적 공기에 지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상품 광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크레이티브적 품질을 따지고 재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해서 나는 블로그에 틈나는대로 CF 리뷰도 올릴까 계획중이다.)

이동통신이 광고의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요즘엔 SKT의 'T'와 KTF의 "SHOW'가 WCDMA 방식의 영상 통화 서비스 시장에서 격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신선하고도 자극적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을까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게 광고에서부터 느껴진다. 극장 매표소 앞에서 '생쑈'를 하고 있는 서단비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줄만큼, 특히 SHOW의 광고는 새로운 버전이 선보일 때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최근 방영되고 있는 SHOW CF의 새 버전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사로 잡고 있다.

이것 역시 '생쑈' 시리즈의 하나다. 쇼를 하면 표를 공짜로 준다 하니 사람들이 매표소라면 가리지 않고 너도 나도 생쑈를 하는 것이다(요즘 특히 이동통신 광고에 등장하는 반미치광이 인물 묘사에 대해선 추후에 따로 다뤄보겠다). 목욕탕 앞에서 치어리딩 춤을 추는 아이로부터 시작해, 수영장에서 아크로바틱한 더블 묘기를 선보이는 수영복 청년들, 봉을 타고 올라가는 남자, 덤블링 묘기를 하는 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시리즈 CF의 스타 서단비가 출연, "죄송합니다. 아직 SHOW는 영화관에서만 공짜입니다"라는 멘트가 따라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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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일까? 이 CF는 지난 2003년 일본 광고 대상을 탔던 산토리의 한 음료 광고 시리즈와 묘하게 비슷하다. 이 광고에도 각종 묘기를 선보이는 기인들이 등장한다. 편마다 설정은 다르지만 교복을 입은 채 제자리 덤블링을 하고 있는 여학생, 국기 봉을 거꾸로 타고 올라가는 샐러리맨, 서로 몸을 밀착시킨 채 더블 덤블링으로 등교하고 있는 두 학생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광고는 특별한 유명인을 캐스팅하지 않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서 당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비슷하다고 해서 SHOW 광고가 이들 광고를 노골적으로 표절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CF가 반드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장르가 아닌 이상, 어느 면에선 창작자가 어디선가 우연히 본 것이 자신의 영감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사실 일본 컨텐츠의 영향력은 특히 한국의 대중 문화에선 거의 보편화된 현상이니 정색하고 표절 어쩌구 하는 것도 이제 우스울 지경이 됐다.)

허나,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우리의 문화 트렌드를 좌우하는 CF영상, 그것도 엄청난 물량으로 브라운관을 잠식하고 있는 대규모 이통사 서비스의 CF가 몇년전 일본에서 방영된 CF의 설정들을 짜깁기한 듯한 인상을 준다면, 그 과정이야 어떻든 수용자의 입장에선 바보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다. CF를 보며 느낀 기시감의 근거를 찾아낸 덕에 결과적으로 나만 바보처럼 느껴지는건지, 아예 그딴거 모르고 '헤~재밌다' 하며 보는 게 바보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CF는 이제 당당히 영상 문화의 주류 매체다. 시청자는 이 짧은 영상을 동시대의 감수성을 파고드는 언어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CF 역시 최대한 창의적일 필요가 있는 것은 그래서이다. 광고 효과의 극대화에 복무하는 창의력이지만 그것이 때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적지 않은 CF에서 확인하고 있다.

아래 세 개의 일본 산토리 음료 광고를 링크해 놓았으니 직접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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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 소녀 편(WMV)

더블 등교 편(RAM)

상승 샐러리맨 편(WMV)






TAG CF, SHOW, 광고, 산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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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첩보 스릴러 <본 얼티메이텀>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09/0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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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런 영화를 보면 질투가 난다. <트랜스포머>같은 영화를 봐도 돈 좀 처발랐군, 하며 할리우드의 위력을 돈과 규모의 논리로 일축하고 마는 한떨기 자존심조차 이런 영화를 볼때면 여지 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밀려 오는 영화적 쾌감에 완전히 넋을 잃어 버릴 때. 완벽한 시나리오, 기가 막힌 촬영과 짜임새 있는 편집, 배우들의 차가운 열연이 혼연일체가 된 걸작 장르 영화를 봤을 때 말이다.

<본 얼티메이텀>은 장르 영화의 쾌감이란 어떤 것인지를 '지대로' 보여준다. 플러스 알파, 이 시리즈의 전통대로 이번에도 국가 권력의 부도덕성을 파고 드는 제이슨 본(맷 데이먼)의 용맹과 지략에 힘입어 '뒤집어 엎어 버리기'가 주는 짜릿한 오르가즘까지 얻을 수 있으니, 어찌 이런 영화를 보고 질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방금 이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언론 시사를 끝내고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한 채 대한극장 바로 옆 피씨방에 들어와 짧은 시사 후기를 남긴다. 2편 <본 슈프리머시>에 이어 또 한번 메가폰을 쥔 영국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일찌기 <블러디 선데이>와 최근작 <플라이트 93>에서 선보인 재능대로, 이 반영웅의 고독한 사투를 그만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감각으로 정신 없이 포착해 낸다.

인물에 밀착하는 핸드 헬드 카메라가 이처럼 효과적으로 사용된 전례가 드물 정도로 그가 창조한 명장면은 영화 곳곳에 포진해 있다. 특히 본이 CIA의 추적을 따돌리고 영국 언론 가디언지 기자와 접선하는 장면, 모로코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킬러와 쫓고 쫓기다가 어느 집 욕실에서 한판 붙는 둔탁한 격투신을 볼 때 관객에겐 어느 정도의 호흡 조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곧 터져 버릴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객석을 순식간에 진공 상태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본'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맷 데이먼의 무표정한 액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CIA 내 강온파를 대변하는 노아 보슨 역의 데이비드 스트라탄(그는 최근 <굿 나잇 앤 굿럭>에서도 명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과 파멜라 랜디 역의 조앤 알렌의 선굵은 연기를 보는 재미는 또 어떤가.

<본> 시리즈는 냉전 이후의 첩보물이 진정으로 천착해야 할 테마, 개인의 희생을 염두에 두지 않는 국가주의의 잔인한 이면,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일거수 일투족을 포착해 낼 수 있는 촘촘한 감시 네트워크의 가공할만한 비정함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진정한 걸작이다. 누구라도 제이슨 본에게 제대로 휘둘리고 나면, 강렬한 쾌감이 몸을 휘감고 지적인 여운이 가슴에 남을 것이다.  

TAG 맷 데이먼, 본 얼티메이텀, 영화 리뷰, 제이슨 본, 폴 그린그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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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터비아> 틈새 공략 성공

박스오피스 헤집기 2007/09/04 10:49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2007.08.31~09.02)

순위       작품명               서울 주말              전국 누계
====================================================
1위    디스터비아                 75,500                 258,500
2위   사랑의 레시피              67,300                 180,500
3위    화려한 휴가                55,500               7,249,900
4위   내 생애 최악의 남자      53,300                 263,800
5위    스타더스트                 36,400                 769,500
6위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34,900               1,005,600
7위      디 워                       29,700               8,282,100
8위     라파예트                   25,200                  78,600
9위    미스터 브룩스             23,000                  75,600
10위  심슨가족 더 무비         14,900                  218,300
11위  사랑방선수와 어머니     14,700                496,700
12위  만남의 광장                 12,200              1,256,700


#이 박스오피스 스코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관련이 없으며, 별도의 취재에 의해 확인한 각 영화의 실제 동원 관객수 근사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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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세대를 위한 <이창>'이라는 <디스터비아>가 잔뜩 움츠러든 반짝 비수기 극장가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경쾌한 스릴러로써 젊은 감각의 재미로 중무장한데다, <트랜스포머> 이후 상종가를 기록중인 샤이어 라보프 효과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디스터비아>가 모은 7만 7천여 명의 주말 관객수는 1위임을 자랑하기엔 조금 머쓱한 스코어다. 각급학교의 개학과 더불어 극장가가 추석 시즌이 본격화하기전까지 반짝 비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전체 관객수 자체가 크게 줄었다. 지난 주말 서울 관객수는 전주 대비 13%가 줄었고, 전국 관객수는 20%나 감소했다.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니 상영작들의 흥행 경쟁 역시 말그대로 도토리 키재기였다. 탁재훈과 염정아가 호흡을 맞춘 <내 생애 최악의 남자>가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잘들어 전국 관객수 면에선 1위를 차지했으나 역시 2위와의 관객수 차이가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디스터비아>와 캐서린 제타존스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레시피>, <화려한 휴가>와 <내생애 최악의 남자> 등 4편의 영화가 선두권에서 고만고만한 경쟁을 치렀다고 보는 게 좋겠다.

828만여 명의 전국 누계를 기록한 <디워>는 <친구>를 제치고 역대 흥행 순위 5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바야흐로 끝물로 접어 들었다. 850만 명 선에서 최종 관객수를 조율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결국 국내 흥행에선 손익분기점(1천 1백만 명)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얘긴데, <디워> 열풍의 제 2라운드를 예고하고 있는 9월 14일 미국 개봉에서 어느 정도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뒷심은 <화려한 휴가>가 끈질기다. <디워>가 개학과 더불어 급락한 것에 비하면 흥행세가 꾸준하다. 지난 주말까지 725만 명까지 전국 누계를 늘렸는데, 곧 새 영화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추석 시즌이니 800만까지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전망된다
TAG 관객수, 내 생애 최악의 남자, 디스터비아, 디워, 박스오피스, 사랑의 레시피,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화려한 휴가, 흥행분석, 흥행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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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국영화 3파전, 도토리 키재기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09/03 13:11

<디워> <화려한 휴가>, 두 영화의 동반 흥행으로 잔뜩 달아오른 여름 극장가가 막을 내리고, 이제 바야흐로 추석 시즌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추석 하면 한국영화, 그동안 홈 그라운드의 이점 십분 살려온 한국영화가 이 절호의 대목을 놓칠 리 없겠죠. 올해도 각자의 필살기로 관객 몰이 채비에 한창인 영화들이 앞 다퉈 흥행전에 뛰어들고 있는데요. 일단 세 편의 영화가 먼저 언론 앞에 본색을 드러내고 기선 제압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봉태규 정려원 커플의 앙증맞은 로맨틱 코미디 <두 얼굴의 여친>, 중년 아저씨들의 꿈 찾아 낭만 찾아 <즐거운 인생>, 그리고 코미디 제왕 김상진 감독과 나문희 여사가 만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까지.


9월 13일 동시에 격돌하는 세 영화의 흥행 3파전이 올 추석 극장가의 명암을 가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 편의 영화 모두 검증된, 안전빵 흥행 코드로 편안하게 흥행하겠다는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