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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7/10/31 전두환 씨에게 감사하는 딱 한가지 (2)
  2. 2007/10/29 잘만든 스릴러의 전율 <세븐 데이즈>
  3. 2007/10/29 M, 저주 받을 영화인가
  4. 2007/10/27 어머니가 위대한 이유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5. 2007/10/26 戒를 넘는 色 <색, 계>
  6. 2007/10/25 <경계> 우리는 왜 선을 긋고 말뚝을 박을까
  7. 2007/10/23 한국영화 쌍두마차, 극장가를 살리다
  8. 2007/10/22 정동영이 아닌 신정환을 닮고 싶다 (4)
  9. 2007/10/18 시장기 돋우는 <식객>
  10. 2007/10/16 <바르게 살자> 어정쩡한 코미디
  11. 2007/10/15 <행복>, 맥빠진 흥행1위
  12. 2007/10/11 [PIFF 폐막에 부쳐] 욱일승천의 대가는 무기력? (2)
  13. 2007/10/09 [PIFF2007] 부산에서 미리 본 <M>
  14. 2007/10/09 [PIFF2007] '소문난 잔치' 와이드앵글 파티를 가다 (1)
  15. 2007/10/07 [PIFF2007] 열정의 우중쇼 보여준 <881>팀
  16. 2007/10/07 [PIFF2007] 너무 쉬워서 난해한 <빨간 풍선>
  17. 2007/10/06 [PIFF2007] <황진이> 야외무대 후기
  18. 2007/10/06 [PIFF2007] <수> 야외무대 후기
  19. 2007/10/06 [PIFF2007] 운좋게 만난 걸작 <4개월 3주...그리고 2일>
  20. 2007/10/05 [PIFF2007] 레드카펫은 패션쇼가 아니다 (1)

전두환 씨에게 감사하는 딱 한가지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0/31 19:31

80년 이른바 '서울의 봄'과 5.18 광주민중항쟁이 무자비하게 진압당한 뒤 신군부가 이반된 민심을 잡기 위해 시행한 두가지 대표적인 정책이 있었다. 하나는 여의도 광장을 그로테스크한 기운으로 채운 '국풍81'이라는 괴상한 관변 축제였고, 또 하나는 교복과 두발 자율화, 그리고 과외 금지 조치로 대표되는 교육 정책의 변화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권의 교육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나다. 만약 지금과 같은 교육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는 대학 문턱에도 다가설 수 없었을 것이다. 과외 금지 조치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거짓말이 그때만큼은 참말이었다. 시골에는 이런 플랜카드가 곧잘 걸렸다. '경축! 박씨네 막내, 서울대 합격!' 내가 들어간 대학 입학식에도 시골에서 올라온 대절 전세버스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사돈에 팔촌까지 농사 짓는 박씨네 막내의 대학 입성을 친히 구경하러들 오셨다. 그건 장관이었고 훈훈한 풍경이었으며, 지긋지긋한 가난을 딛고 신분 상승의 기회를 거머쥔  돌쇠들의 축제였다. 

또 한번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정권은 바로 그 교육 정책의 수혜자들에 의해 정권 말기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다. 87년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체제의 모순을 이미 피부로 알고 있는 노동자 농민 계급의 출신이었던 것이다. 과외 없이 교과서만 열심히 판 돌쇠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와 불합리한 세상에 제일 먼저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지금,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날 일은 없다. 배운 부모들은 스스로 입시 전문가가 돼 신분 상승이 아닌, 신분 유지를 위해 머리를 굴리고, 그 우산 속에서 사육되는 아이들은 교과서만 파는 게 순진하고도 멍청한 짓이라는 진리를 주입 받는다. 반대로 침 찍찍 뱉는 아이들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들이 루저가 됐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안개 같은 세상을 어떻게 파고 들까 고민한다. 세번째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아이들이 교과서를 불신하는, 말끝마다 '졸라'와 '씨바'를 달고 다니는 마마보이, 마마걸들보다 한국어 발음이 경향적으로 더 명확하다. 이미 기회가 원천 봉쇄된 세상을 혼자 힘으로 뚫고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 보수 언론과 가진 자들이 고대하고, 세상이 무기력하게 예상하는대로 대선 이후 정권이 바뀌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콩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재미 없고 끔찍한 세상이 고착화될 것이다. 강남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못받아 안달이 난 이른바 명문 대학들은 아빠 엄마가 선호하는 정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불구 지성의 썩은 상아탑이 될 게 틀림 없다.
 
어쩌면 지금 가장 확실해 보이는 다음 정권의 뿌리가 20여 년전 그처럼 혁명적인 교육 정책을 펼쳤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할 뿐이다. 행운아였던 나는, 과외를 받지 않고도 대학에 갔다. 전두환 씨에게 딱 하나 감사한 것은 그것이다.

TAG 과외, 교육 양극화, 국풍 81,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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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phonse 2007/11/01 0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이... 10월 31일날...;;; 적혀졌다는 것...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에~ 시월에 맨끄티 밤을~~~;;;

    • cinemAgora 2007/11/01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이용이 글에서 언급한 국풍 81 가요제 출신이었죠. 어찌 어찌 관련이 있다는...

잘만든 스릴러의 전율 <세븐 데이즈>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9 19:25
충무로에는 소문이라는 게 돈다. 촬영 과정에서 감독이 스탭들에게 린치를 당했다더라, 모 감독과 여배우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내가 연예 기자도 아닌 이상, 귀담아 들어봤자 큰 쓸모 없는 소문이고, 또 땐 굴뚝에서 연기 안날 경우도 적지 않아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소문들이다. 그러나 거의 들어 맞는 소문들도 있다. 어떤 영화 지금 편집 중인데 촬영 본이 워낙 엉망이라 감독이 편집실에서 쫓겨났다더라, 이런 소문 나는 영화, 십중 팔구 개판 오분전인 퀄리티일 경우 많다. 그 영화 끝내준다더라, 라는 소문도 비교적 신빙성이 있다. 이런 소문 난 영화 치곤 별로였던 경험이 별로 없다.

오늘 언론 시사회를 통해 본 <세븐 데이즈>도 소문이 썩 괜찮았다. 모처럼 괜찮은 장르 영화 한 편이 나올거라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이 영화에서 형사로 등장하는 배우 박희순은 무대 인사에서 "구차한 포장은 하지 않겠습니다. 일단 보십시오."라고 했고, 원신연 감독은 시사에 온 극장주들을 의식해 "스크린 독과점 안될 정도로만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디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는 좋은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과연 자신감 가질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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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긴 설명 하지 않겠다(영화 줄거리는 다른데서 보시라). 스릴러 영화를 소개하면서 긴 설명하는 것은 잘난 척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못된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냥 몇마디 보태면 이렇다.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며 경악했거나,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을 보면서 우리도 저런 '죽이는' 이야기 하나 못만드나 싶었던 분, <24>나 <프리즌 브레이크> <C.S.I> 등 미드 스릴러의 치밀하고 정교함에 푹 빠져 보신 분, <세븐 데이즈>를 보시라. 후회 없을 것이다(무슨 약장사 멘트 같긴 하지만, 영화사에서 시사회 표 말고는 받은 것 없으니 안심들 하시라).

지난해 기가 막힌 폭력 영화 <구타 유발자들>로 세간의 좁은, 그러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원신연 감독은 어떻게 이런 종류의 장르 영화를 요리해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정신 없이 빠르게 장면을 편집하고, 또 정신 없이 요란하게 카메라를 흔들어 대면서도, 중심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관객을 이야기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가는 솜씨는 그가 이미 장르에 통달해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시나리오의 높은 완성도는, 입에 침이 마를 칭찬이 아깝지 않다. 모처럼 잘 만든 스릴러의 전율을 만나니 반갑고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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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데이즈>는 배우 박희순의 매력을 재발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남극일기>나 <귀여워> 등으로 잠재력을 드러냈지만, 막무가내형 비리 경찰이지만 정도 많고 의협심까지 갖춘, 다소 전형적일 뻔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온전히 그의 연기자적 내공이다. 더불어 건달 보스로 등장한 우리의 오광록도 진가를 발휘한다. 그의 입에서 나와야 제대로인 명대사는 이번에도 예외가 없다. "신문지가 날 때리네~"


TAG 세븐데이즈, 원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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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저주 받을 영화인가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0/29 19:24
이명세 감독의 <M>이 예상대로(!) 개봉하자마자 평점 권력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바야흐로 저주의 공세가 시작됐다. 영화가 대중 관객의 선행한 기대를 배신할 때 그 미학적 도전과 성취에 아랑곳 없이 쓰레기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성급한 예단일지 모르지만, <M> 역시 그런 문화 현상에서 예외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M>을 보고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이명세와 영화에 대해 상찬을 늘어 놓은 바 있는 나는, '미스터 M'을 노골적으로 변호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래는 대화체로 구성한 M을 위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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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뭐가 이럴 줄 알았다는거죠?

이명세 감독의 <M> 말입니다. 개봉하자마자 평단에선 극찬, 관객들로부터는 혹평을 듣고 있죠.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겁니다.

영화가 너무 아방가르드 하면 그런 현상이 벌어지죠. 영화 <M>도 대중 영화치고는 많이 아방가르드하지 않나요?

아방가르드? 방가 방가라는 뜻인가요? 어쨌든 <M>, 도대체 그렇게 저주 받을 영화인가. 함께 곱씹어 보도록 하죠.



영화 <M>, 시작부터 혼란스럽습니다.
정신없이 빠른 편집, 음산하고 기괴한 공간이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죠.

쉬운 말로 합시다!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라는 말씀이죠?

아방가르드 어쩌구 하실때는 언제고!
좋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직설적이라 함은 에두르지 않고 똑바로 정직하게 간다는 얘깁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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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실 분들 보고 안보실 분들 여기저기 영화 프로그램에서
외우다시피 틀어댔을테니 줄거리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젊은 소설 작가 한민우가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죠.
그리고 그 꿈의 주인공은 한민우의 잊혀진 첫사랑, 바로 미미라는 여성입니다.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군요.

단순하다 못해 쉽죠. 아주 쉬운 이야깁니다.
그런데 이걸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게 이명세 감독의 병이죠.

<형사: 듀얼리스트> 보니까 병도 아주 중병이던데요.

네, 그게 바로 예술가 병이라는 겁니다.
영화란 게 도대체 뭐냐, 영화가 시나 소설과 다른 게 뭐냐,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근본주의자군요.

그렇죠. 말하자면 영화 예술의 근본주의자인 것이죠.

그렇다면 그 탈레반적인 영화감독께선 영화란 게 뭐라고 생각하신답니까?

영화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이다!
한마디로 영화는 이미지를 통해 감독과 관객의 무의식이 교감하는 예술이란 것이죠.

흠..자못 철학적이군요. 어려운데요.

어려울 게 뭐 있습니까. <M>의 영상들이 다 말해주고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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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스틸 사진을 이어 붙인듯한 편집에, 때론 영상과 대사가 따로 놀죠.
이야기체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정서를 전달하고 있는 거죠.

어떤 정서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정서죠. 그러니까 한민우의 꿈에 관객들이 동참하고 있는 듯한 느낌.
왜 꿈을 꾸면 모든 게 논리에 맞게 딱딱 아귀가 맞던가요?

그렇지 않죠.

네, 그렇지 않죠. 그러니까 감독 이명세는 영화 자체를 한 편의 꿈처럼 설계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잘 안가죠. 이 영화 역시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어 놓고 시간이나 공간을 명확한 구분 없이 마구 뒤섞어 놓고 있는 것이죠. 관객들조차 진짜 한민우가 꾸는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군요. 그래서 영화가 살짝 졸렸나?

그럴지도 모르죠. 자각몽이라는 말도 있죠.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꿈꾸고 있는 상황,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어쩌면 그런 자각몽과도 같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저기 미국에도 한분 계시죠.
바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인데요.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영화가 대표적이죠.

지금은 아주 잘나가고 있는 나오미 와츠를 발견해 낸 영화로도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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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역시 할리우드에 온 두 여배우들을 주인공을 내세운 상태에서 꿈과 현실,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오락가락 하면서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죠.

아주 천재적인 관객이 아닌 이상,
영화를 다 본 뒤 마치 자신의 꿈을 해몽하듯,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사실 그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죠.

흠. 저는 이 영화 보고 나와서 별로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본인이 천재라는 얘기를 하고 싶으신거죠?

[뜨끔!]

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라는 영화는 또 어떻습니까.

어우 진짜 머리 아픈 영화였죠. 그래도 흥미진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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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는 것으로 설정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이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과 정반대로 사건이 분절적으로 배열되면서 마치 관객이 주인공처럼 단기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똑같은 감독이 만든 <인썸니아>는 반대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형사의 이야기죠.
사건은 해결이 안됐고, 그 놈의 백야 때문에 잠은 안오고 아주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죠.
신기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자신이 똑같이 불면증에 걸린 듯
졸리면서도 잠이 안듭니다.

같이 미치고 팔짝 뛰는거죠.

그렇습니다. 이렇듯, 꿈과 기억의 문제를 파고드는 영화들은 하나 같이
관객들이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체험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M>으로 돌아올까요?
그러니까 한민우의 꿈과 기억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영화 <M> 역시
종잡을 수 없는 꿈의 나라처럼 그려질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낯설고 생소한 이 영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죠.

그 가능성에는 이 영화가 숱한 이야기 서술체 영화들이 자주 써먹는
이른바 고전적인 플롯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사건의 필연성, 외부와의 갈등...이런 요소들 대신
시공간이 초현실적이고, 사건은 우연하게 일어나고, 갈등은 주인공의 내면에만 존재하죠.
전통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들은 그 예술적이고 과감한 시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죠.

하지만 흥행은 보장이 안된다는 거~!


맞습니다. 그래도 전 관객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대가의 추상화를 처음 볼때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자꾸 보다 보면 그 안에서 어떤 감동을 얻게 됩니다.

내가 잘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영화가 조금 낯설다고 해서,
영화가 영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건 그야말로 아니올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땐, 그냥 이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니었어, 라고 말씀하시는 게 더 솔직하고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그게 포털 사이트 영화 평점에다 1점의 저주를 쏟아 붓고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는 것보다 문화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명세 감독, 이번에도 관객들의 냉소에 너무 급좌절 마시고,
그 영화 철학 쭉 뚝심있게 밀어 붙이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미국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기는 그의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원제 STORY, 황금가지)에서 영화가 구사하는 이야기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고전적 설계라 할 수 있는 아크플롯, 미니멀리즘적 특징을 보여주는 미니플롯, 그리고 반구조적 경향의 안티플롯이 그것이다.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이야기들이 채택했던 방식,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영화들이 채택한 방식은 아크플롯인데, 인과성, 닫힌 종말, 연속적인 시간, 외적 갈등, 활동적인 단일 주인공, 일관된 사실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에 반해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은 열린 종말, 내적 갈등, 수동적인 주인공, 우연성, 비연속적 시간 등이 특징이다.

이 분류에 의하면 이명세 감독의 <M>은 아크플롯보다는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 쪽에 더 가까이 서 있거나, 혹은 세가지 요소를 모두 뒤섞어 놓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맥기는 영화가 취하는 이야기 형태와 관객층과의 함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함으로써 영화 <M>을 둘러싼 논란에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티플롯의 비연속적인 사실성과 미니플롯의 내면화된 수동성, 그리고 논플롯의 변화없는 순환성 등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은유로서 인정하지 못한다. 이야기가 삼각형의 바닥으로 가까워질수록(그러니까 아크플롯보다 미니플롯이나 안티플롯쪽으로 다가설수록) 관객층은 자신들의 삶의 사실성을 가끔씩 한번 비틀어보고 싶어하는 소수의 영화애호가 지식인들로 좁아진다. 이들은 분명히 열성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임에 틀림 없으나 아주 적은 수의 관객층이다."

어쩌면 영화 <M>의 비극은, 이 운명을 가리기 위해 고전적 설계의 영화인 것처럼 꾸며야 했던 데서 출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핀트가 잘못된 기대감을 형성하고, 지도가 틀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관객들이 지도를 탓하지 않고, 잘못 찾은 집 주인을 호통치고 있는 셈이다. "지도에는 아크플롯이 살고 있어야 하는데, 당신 왜 여기 살고 있는거야!" 하면서.

TAG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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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위대한 이유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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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위대하다. 많이 듣는 소리다. 그만큼 모성에 대한 칭송은 고금을 막론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비록 최근에는 가부장의 위기 상황에 대해 다분히 반대급부적인 부성애 찬양 영화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영화만 해도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 <말아톤> <엄마> <맨발의 기봉이> <허브>, 최근에는 하명중 감독의 직설적인 모성 찬양극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코미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까지, 어머니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영화의 전통은 트렌드의 향방과 상관 없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만큼 시대와 환경을 막론한 보편적 감동의 원천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모성을 소재로 채택한 많은 영화들이 모성애의 강조를 위해 드라마틱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자주 봐 왔다. 가족 휴먼 드라마라는 장르적 범주가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현실에서 모성의 풍경은, 적어도 제 3자가 보기엔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거나, 때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지부진한 생계 전선에 나가거나, 대개 어머니의 처지는 어머니이기에 특수해 보이지 않는다. 요즘엔 자식들을 위해 입시 전문가를 자처하거나 대학 수강신청까지 대신 해주는 열성 어머니들이 있다고는 해도, 그것조차 모성의 소산이므로 유난스러워 보일지언정 보편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일생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순간이나 불의의 사고로 자식과 사별하는 순간 말고 어떤 극적인 드라마가 있을 수 있을까.

왜 없겠는가. 어머니의 눈에 자식이란 태어남부터 자라나는 모든 과정이 드라마다. 그 자식이 첫 걸음을 떼고, 처음으로 말 다운 말을 하는 순간,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고, 대학 졸업장을 받아오고, 취업을 하게 되고...순간 순간이 새록새록 드라마다. 차원이야 다르겠지만 자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군대 훈련소에 면회 온 어머니를 뒤로 한채 다시 병영으로 행진해 돌아갈 때, 꾸역 꾸역 '멋진 사나이'를 부르며 삼켰던 눈물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그 순간을 능가하는 드라마틱한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영화화한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전형적인, 그래서 드라마적이지 않은 듯 보이는 한 어머니의 인생에서 드라마를 뽑아낸다. 언뜻 가장 드라마틱해 보이는 아버지와의 불화와 이별을 그냥 저냥 툭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커나가는 아들을 홀로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의 고단하면서도 낙천적인 생을, 그리고 그 마지막을 아주 긴 러닝타임 내내 담담하게 묘사하는 데 그친다(오히려 아들의 방탕한 대학 시절과 지지리 궁상의 가난한 시절이 더 많이 나오는데, 그런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어머니는 마치 후경처럼 단단한 존재감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와 자식은 필연적으로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가 끝내 이별할 수밖에 없도록 맺어진 관계다. 그러므로 둘은 서로에게 드라마다. 이 영화 속의 어머니와 아들도 그렇다. 진학을 위해 탄광촌의 집을 떠나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특별하지 않은 풍경에서  꽤 큰 감동이 밀려 오는 데 대해 나는 놀랐다. 정성스레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힘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쓰인,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편지 글을 읽으며 주인공이 울먹일 때, 장식이 달리지 않은 이 정직하게 보편적인 풍경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상 어머니와 아들간의 교감을 어떻게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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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모든 관객들이 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잠재된 아련함과 경외감을 신뢰한다. 신뢰하므로, 이렇다할 영화적 설정이나 장치 없이, 이를테면 주인공 아들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의 슬로 모션만으로도 기꺼이 눈물을 훔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릴리 프랭키 소설 속의 어머니는 말년에 아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이웃 주민들에게 애써 밥을 해 먹이는, 넉넉하고 호탕한 분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어머니는, 메마르고 황폐한 듯 보이는 도쿄라는 도시적 공간을 인정이 흐르고 살갑게 챙겨주는 '고향'으로 만든다. 그게 이 작품이 설파하는 진정한 어머니의 위대함이 아닐까. 자기 아들에 대한 헌신에만 그치지 않고, 모두에게 어머니일 수 있는 어머니성의 진면 말이다. 후반부의 암투병과 모자의 사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 나머지 영화가 이 부분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일본의 고두심, 또는 김혜자라고 불러야 하나? 영화 속 노년의 어머니를 연기한 키키 키린의 연기는 대단하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연기한 우치다 야야코는 그녀의 친딸이라는데, 실제로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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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오다기리 죠,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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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를 넘는 色 <색, 계>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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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영화 <색, 계>를 시사회를 통해 봤다고 했더니 질문들이 한 곳으로 쏠린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대부분 여성들의 것이다. "양조위가 진짜 벗어요?" "배우들이 진짜로 한다면서요?" "어디까지 나와요?"

야한 영화, 남자들만 밝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에로틱 신'에 대해서만큼 여성들의 관심도 간단치 않은 것 같다. 하물며 주인공이 누구인가. 한없이 슬픈 눈의, 안아주고 싶은 남자 양조위 아니던가. 그래서 그 질문들을 간단히 압축하면 양조위가 어느 정도 수위의 노출 연기를 선사하느냐, 렸다. 답은 간단하다. 다 벗고 보여줄 것 다 보여주며, 할 것 못할 것 다한다. 소문대로 양조위는 여배우 탕웨이와 정사 장면에서 실연을 펼친다, 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적지 않은 분들이 제일 궁금해 하실 부분에 대한 답을 제시했으니, 이제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를 탐문할 차례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제목 그대로다. 1940년대 상하이를 꿀꺽한 일본 괴뢰 정부의 개를 자임한 첩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한 애국적 스파이 여성이 노린다. 운 나쁘게도 동료들 중 가장 예쁘게 생긴 왕 치아즈(탕웨이)는 사업가의 매력적인 부인을 가장해 매국노에게 접근한다. 그를 유혹해 암살하려는 계획.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얄궂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홀딱 빠져 버린다. 이 홀딱 빠지는 계기를, 영화는 제목 그대로 '색' 즉, 섹스에서 찾는다. 두 사람은 잠재적인 적이지만, 침대에서만큼은 변강쇠와 옹녀다. 육정(肉情)이 무섭다고 하던가. 육정이 드니 이성이 무뎌진다.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바야흐로 색(色)은, 계(戒)를 방해한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편안한 쪽에 섰고, 한 사람은 조금 더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쪽에 서 있다. 그런데 '색' 앞에서 두 사람의 선택은 무의미하다. 치사한 생존이냐, 대의를 위한 희생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중요한 건 '막 부인' 왕 치아즈가 "뱀처럼 몸안으로 들어오는" 이의 치명적인 매혹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며, 의심 많은 이도 막 부인의 눈빛에서 다른 의도를 발견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30분간의 정사 장면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감각의 제국: 상하이 편>이나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탱고>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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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작가 애니 프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브로크백 마운틴>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중국 출신의 여류 작가 장 아이링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서로 다른 소설에서 빌어오긴 했으되, 이안은, 자연이든 시대든 인간을 짓누르는 환경 안에서 사랑이라는 감성에 쉽게 포획되는 인물들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하다는 것을 이번에도 입증해 보인다. 어느 싸늘한 밤에 충동적으로 서로를 탐한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카우보이는, <색, 계>의 리와 왕 치아즈와 다르지 않다.

대관절 이 치명적이고도 신비로운 화학작용을 어떤 신념과 이성의 수사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나 이데올로기, 제도와 윤리가 단죄할 수 없는 유일한 지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남녀간에 생기는 불꽃일 것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사랑은 고통을 동반한다. 사랑은 보편적이되 누구도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므로 고통스럽다. 내가 아는 한, 이안은 그 모순적인 풍경을 가장 멋지게 묘파하는 작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모델 출신의 배우 탕웨이에게 홀딱 빠지고 말았다. 세우지 않은 코, 입술 위로 살짝 올라온 인중의 언덕, 깎지 않은 겨드랑이의 털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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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색 계, 양조위, 이안, 탕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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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우리는 왜 선을 긋고 말뚝을 박을까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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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하는 영화 감독이다. 줌인이나 줌아웃, 클로즈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 완고한 예술가는 카메라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거나 불가피할 경우에만 아주 느릿느릿 패닝을 할 뿐이다. 그것도 주로 등장 인물이 프레임 바깥으로 걸어 나간 뒤에야 졸다 깬 사람처럼 뒤따라 간다. 나처럼 성질 급한 관객은 그 호흡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경계>를 보면서도 속으로 몇 번 외쳤다. '빨리 돌리란 말야, 이 게으름뱅이!'

그러므로 장률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기존 영화보기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함을 뜻한다. 인물의 상황과 배경을 시각화해 제시하는 그의 방법론이 '응시와 관조' 또는 그를 통한 '사유의 투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의 영화는 대개의 관객들에게 고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른바 주류적이지 않은 예술을, 피카소나 잭슨 폴락의 그림을 응시하는 듯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면, 둑이 터진 듯 치고 들어오는 감정의 파고가 시야를 통해 가슴 속으로 급습해 들어오는 전율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작심이라도 한 듯, 부동의 지점을 급히 떠난 듯, 손에 들린 카메라가 절망과 격정, 혹은 관조와 해방의 경지에 이른 인물의 뒤를 바짝 뒤쫓는 바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눈시울에 깜짝 놀랐다. <망종>에서도 그랬고, 이번 영화 <경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단순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조장된 감동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 막막함, 그리고 처연함 등 온갖 복잡한 감정이 융화돼 마그마처럼 치솟아 올라오는 그런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망종>에 이어 이번에도 최순희 이야기다(그래서인지 이번에 순희를 연기한 배우 서정은 ,망종>의 순희(류연희)와 놀랄만큼 흡사한 캐릭터를 재연하고 있다). <망종>에는 김치 팔던 조선족 여인이었던 그녀가 이번 영화 <경계>에서는 어린 아들 창호(<망종>의 창호는 기찻길에서 놀다가 죽는다)의 손을 잡고 막막한 몽골 초원의 외딴 집으로 흘러 든 탈북 여성이 됐다. 두만강이라는 경계를 넘어 경계 없는 초원에 왔지만, 이곳에도 경계는 존재한다. 갈 곳 없는 순희와 거처를 공유하는 몽골 남자 헝가이는 어린 딸과 아내를 도시에 보낸 채 사막과 초원의 경계에서 투쟁 중이다. 두 사람간의 언어의 장벽은 경계가 되지만, 어린 창호는 그 경계를 훌쩍 넘는다. 초원을 살리려는 헝가이의 노력에 두 사람은 노동으로 화답하고, 그 또한 경계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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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으로 떠남을 재촉하는 엄마와 달리 몽골 아저씨의 거처에 남길 원하는 창호는 초원에서 대화를 나눈다. "창호는 여기가 좋니?" "여긴 사람이 없잖아." "창호는 사람이 싫어?" "사람이 없으면 안전하니까." 사람이 없으면 안전하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늘 경계를 만든다. 사람들 속에 언제나 참기 어려운 경계가 있다. 그러나 홀로 있어야 하는 외로움을 이겨내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북한을 탈출하면서 남편을 잃은 순희는, 헝가이의 취기에 의존한 구애를 뿌리친 대신, 다짜고짜 가슴을 만지는 젊은 군인의 몸은 거부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또 다른 경계가 생긴다.

장률은 묻는 것 같다. 왜 우리는 선을 긋고 말뚝을 박고 살 수밖에 없을까. 경계 짓기가 인간의 숙명일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계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것 말고는 무엇이 있겠냐고. 골치 아픈 문제다. 속 편하게 시대의 무게를 핑계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원시적 삶의 조건을 함의한 초원을 배경으로, 그 화두를 좀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 그러니 더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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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률 감독, 신동호(창호),서정(최순희)

시사 전 무대 인사에서 장률 감독은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몽골 초원에 가 있다"고 했다. <경계>를 찍으면서 그곳에서 찍을 다른 영화들까지 계획을 해 놓았나 보다. 이 경제적일 수밖에 없는 비주류 감독은 시사회에 참석한 스탭들에게 물었다. "시사 끝나고 저와 함께 몽골 초원으로 다시 가실거죠?" 그들중 누군가 짧고도 분명하게 답했다. "아니요!" 영화 <경계>를 찍으면서 그들 사이에도 경계가 생겼나 보다. 그래도 그 풍경은 살갑고 귀여워 보였다. 배우들과 제작진에겐 마음대로 씻고 먹을 수 없는 초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경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계 짓기가 숙명이라지만, 경계는 때론 뛰어 넘으라고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계와 경계 사이에는 늘 어디론가 뻗어 있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TAG 경계, 망종, 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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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쌍두마차, 극장가를 살리다

박스오피스 헤집기 2007/10/23 10:13

지난한 극장가 불황에 한국영화 두 편이 살짝 종지부를 찍었다. 코미디 <바르게 살자>와 시대극 <궁녀>가 쌍두마차였다. 두 영화는 지난 주말 사흘동안 서울에서 각각 14만 4천여 명과 13만 4천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전주 대비 37%의 관객 증가세를 견인했다. 전국 관객수에서도 54만 6천 명과 54만 5천 명으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40% 안팎의 관객 증가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때 아닌 극심한 불황기를 탈출하는 것이 흥행 시장의 화두인만큼, 두 영화의 동반 선전에 대해 의미부여하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허나, 냉철하게 말해 두 영화가 '윈윈'했다고 보기엔 2% 부족한 스코어다. 오히려 극장만 윈하고 영화는 '루즈'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상황이다.

첫 주말 55만 명 안팎이라면 지금의 극장가 경기에서 200만 이상의 흥행을 내다보기엔 무리다. 그렇다면 대략 손익분기점을 맞추거나 근접한 수준에서 머물 가능성이 높다. 개봉 이후의 평가 면에서도 롱런을 장담하긴 어렵다.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해 놓고도 117만 명 관객 동원에 머물며 단박에 5위로 곤두박질친 <행복>이 불길한 전조다. 불황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번주 개봉하는 <M>이 어느 정도의 흥행 폭발력을 발휘해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건 그때문이다.

서울 관객수 기준 주말 흥행 순위(2007.10.19~21)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서울/전국)     서울 주말      전국누계
===================================================================
1위         바르게 살자            79/380                144,000           546,000
2위           궁                       85/393                134,000           545,200
3위       레지던트 이블 3        46/226                  61,900           227,400
4위       어깨너머의 연인        43/205                 40,100           135,900
5위            행복                   55/257                 25,000         1,170,800
6위       카핑 베토벤              34/126                 21,100           181,600
7위        비커밍 제인             52/192                 16,000           181,000
8위        브레이브 원             42/129                 11,500           152,000

TAG 박스오피스, 흥행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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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이 아닌 신정환을 닮고 싶다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0/2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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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환 팬카페 대문 사진


아내는 신정환의 팬이다. 낼 모레 마흔을 앞둔 나이를 잊은 채 신정환 팬클럽에 들까 말까 요즘 고민이다. 대학 시절에 날 만난 그녀는, 대학 때의 내 모습이 신정환 같았다고 회고하면서 틈만 나면 외친다. "그 시절의 널 돌려줘~!' 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까불이였던것만큼은 맞는 것 같다. 나는 술자리에서 1분 이상의 침묵이 흐르는 걸 참지 못했고, 진담을 농담에 섞어 던지는 걸 좋아했다. 데모도 그냥 하는 게 따분해 북치고 장구 치는 풍물패에 들었다. 학생회장 선거때 캠페인 송과 율동을 만드는 건 내 몫이었다. 기억의 저편에 묻혀 있어서 나조차 내 과거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지만, 어쨌든 희미하게나마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까불이는 군대를 다녀오고 운 좋게 언론사에 입사한 뒤, 적을 앞에 둔 보병처럼 잔뜩 눈에 힘을 준채 세상을 응시하라고 배웠다. 그리고 돌격 앞으로의 명령을 따라 죽자 사자 내달렸다. 그 사이에 술 석 잔 마시면 오바이트를 세 번 하던 까불이는 폭탄주 석잔을 연거푸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게 됐다. 학창시절처럼 몇 번 까불다가 그때마다 어깨에 철근을 이고 사는 선배들에게 혼이 났고, 시나브로 내 어깨에도 철근이 매달렸다.

내가 쓴 기사 때문에 전화가 오면 우쭐했다. 기사에 등장한 몇 명의 인간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직장을 잃었다. 그 권력의 달콤함에 취한, 또한 그 방법론의 유효성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은 나는 직장을 옮겨서도 목에 힘을 줬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처음에 후배들은 나를 무서워 했으나 이후에는 싫어 했다. 지금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와 "선배 술 한잔 사줘요"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는 재수 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그것이 내가 두번째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유다. 대학 때 거리에 나서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나는, 사람과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소통에 실패한 셈이다. 내가 생각해도 재수 없다.

지금, 아내는 내가 정동영을 닮았다고 말한다. 무슨 뜻이냐 했더니, 기자 시절의 정동영은 맑고 투명해 보였는데, 지금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욕망이 겹쳐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표정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아! 그렇다면 나는 정동영처럼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신정환처럼 까불고 싶다. 너무 멀리 와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TV에 나온 신정환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어떻게 하면 깃털처럼 가볍게 까불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고민해도 소용없는 그 고민을 밤늦도록 한다.

TAG 신정환,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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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갑생 2008/08/21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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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박갑생 2008/09/11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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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박갑생 2008/09/21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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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박갑생 2008/10/12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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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기 돋우는 <식객>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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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라는 건 시기, 색깔, 연륜, 기대, 냄새, 인생관 기타 등등의 수많은 함수를 직감적으로 풀어낸 결정체" 성석제 산문집 '소풍' 중에서.

허영만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식객>을 언론 시사회를 통해 봤다. 이 영화, 지상의 온갖 산해진미를 펼쳐놓고 늘어가는 뱃살에 고심하는 관객들을 식욕의 나락 속으로 빠뜨리는, 아주 못된 영화다. <식객>은 웃음보 이전에 침샘을 자극하고, 눈물샘 이전에 위장을 직격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끼니를 직전에 두고 봐야 제 맛이다. 비록 입이 아닌 눈만 호강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식객>이 미식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그쳤다고 말하면 감독과 배우 섭할 것이다. 명색이 영화다.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흐르고 그 안의 대결 구도에서는 좀더 착하고 정직하며 성실한 녀석이 이긴다. 그러니까 대중 영화이며, 착한 영화이다. 게다가 쉬운 영화이다.

허영만 만화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감독 전윤수가 영화적으로 재창조한 인물들은 다분히 만화적이다.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의 대결 구도도 전형적이다. 이하나와 김상호, 정은표 등이 연기한 조연들의 배치도 그 범위 안에 놓여 있다.

음식을 매개로 한 두 요리사의 치열한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식객>은, 여기에서 살짝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친일과 애국이 뒤바뀌어 버린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을 배경으로 깔며 친절한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의 역사적 정의감을 (다소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것이다(그러다보니 러닝타임이 길어졌다. 그래서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다).

진정한 맛이란 위에 인용한 책에서 성석제가 갈파했듯,  단순히 혀끝을 자극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핵심은, 맛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것을 맛보는 사람과의 교감이며, 잔기술이 아닌 정신의 결과물이다. <식객>은 그 진정한 맛의 달인을 오해와 편견의 감옥에 가뒀다가 다시 복권시키는 가운데, 관객들이 그에게 감읍할 수 있도록 인간적이고도 역사적인 정당화를 선사한다. 거창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러므로 이 영화는 갇힌 시대 정신의 부활과 전도된 가치의 복권을 욕망하는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회가 끝나니 당연하게도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8천원 짜리 고급 음식으로 둔갑한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그래서? 영화가 볼만하다는 얘기야? 허영만 원작을 영화화한 <타짜>에 비해, 물론 원작의 내용이 달라서이겠지만, 훨씬 더 친절하고 쉽게 풀어낸 영화다. 그러다보니 극의 긴장감은 <타짜>에 미치지 못하고, 음식 만드는 과정을 비추는 장면 외에 대단히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장면도 많지 않다. 호기롭게 고급 한정식 집에 들어섰다가 특별할인가의 단출한 정식을 먹은 기분이랄까? (내 경우,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TAG 김강우, 식객, 이하나, 임원희, 전윤수,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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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자> 어정쩡한 코미디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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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고, 라희찬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바르게 살자>는, 주연으로 정재영까지 가세했으니 안봐도 장진 사단의 냄새가 물씬 풍길거라 예상할 수 있다. 과연 그런 것도 같다. 흔히 장진 감독의 코미디를 '엇박자 코미디'라고들 부르는데, 관객들을 웃기는 타이밍이 한 템포나 반 템포 늦게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 모순이다. 코미디는 원래 엇박자라야 웃긴다. 예상대로 흐르면 재미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말은 사실 장진식 코미디를 설명할 이렇다할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 저널이 대충 갖다 붙인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나는 또한 해석하고 있다.

대신, 장진 코미디가 갖는 진정한 매력은 전혀 웃기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웃기는 대사나 행동을 슬쩍 배치하는 재치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의표를 찌르길 좋아하는 장진의 예측불허 테크닉은 좁게는 한마디 대사에서부터, 넓게는 이야기 전체로 확장되기도 한다. 역시 장진 감독이 각본을 쓴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머리에 꽃 꽂았시유."라는 임하룡의 대사 한마디로, 인민군과 '미친년' 강혜정의 첫 조우의 긴장감을 순식간에 누그러뜨리며 폭소를 자아낸다. <아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교도소에서 외출 나와 아들을 처음 대면하는 순간, 차승원의 대사는 감동을 자아내는 상투어를 예상했던 관객들을 슬쩍 배반한다. "아들의 눈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실은 목도리로 얼굴을 가려서 그렇습니다."(대충 이런 대사인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니까 그는, 부조리의 미학으로서의 코미디의 본질을 배운대로 착실히 써먹고 있다는 얘기다. 가끔 관객과의 '메롱 요건 몰랐지' 게임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아들>에서처럼 극단적인 반전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일본 원작 소설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를 토대로 새로 각색 작업을 거친 이 영화 <바르게 살자>도 그런 면에선 장진 코미디의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말은 동시에 그래서 별반 새롭지 않은 영화가 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설정의 참신성은 원작에서 빌어온 것이니 그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할 이유는 없고, 핵심은 코미디로서 이 영화가 얼마나 제대로 관객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조금 더 바란다면, 그래서 잘 만든 코미디의 자격조건인 풍자적 희열까지 선사해주고 있느냐의 문제다. 그러니까 코미디의 기본을 갖췄다는 전제 하에 장진 코미디가 어쩌구 저쩌구 해야 한다는 말이다.

순경 정도만이 원리 원칙대로 산다는 이유로 바보 취급 당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를 바보 취급한 세력들이 된통 당한다는 얘기렸다. 은행 강도 모의 훈련에 들어갔으면 강도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믿는 정도만이 군대용어로 'FM(Field Manual)대로' 하는 바람에 일이 자꾸 꼬여 간다는 거다. 그런데 그는 결코 일탈하지 않는다. 진짜 '바르게' 강도짓을 한다. 선과 악, 바름과 그름, 합법과 불법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해프닝이다.

이건 그 자체로 코미디다. 게다가 장진 감독이 좋아하는 설정이다. 남한에 와 사면초가의 신세가 된 북한 간첩(<간첩 리철진>, 착하고 정의로운 킬러들(<킬러들의 수다>), 시한부 인생이라 착각하는 얼뜨기 야구선수와 예쁜 스토커의 괴상한 순애보(<아는 여자>), 국군과 인민군의 죽일수도 살릴수도 없는 조우(<웰컴 투 동막골>) 등 현실성은 있지만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하나의 환경 안에 버무려 놓고, 그 충돌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웃음 뿐 아니라 페이소스까지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장진은 잘 활용해왔다. 그러므로 이 영화 역시 시츄에이션의 얼개에서 이미 장진적 코미디라 부를 수 있는 자격조건을 한껏 갖췄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해프닝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파열돼 나올법한 웃음을 위한 알리바이, 즉 긴장감의 강도가 고양되지 않고 이야기가 느슨하게 흐른다는 것이다. 코미디의 대전제는 완성됐는데, 소전제들이 딱 예상 영역 안에 놓여 있는 셈이다. 여기서도 장진 사단 특유의 코미디 감각은 군데 군데 엿보이긴 하지만 이제 그것조차 진부하게 보일만큼 이미 익숙한 그 테크닉은 의표를 찔린 자의 흔쾌한 폭소로 이어지지 못한다. 웃음이라는 측면에서, 어퍼컷이나 카운터 블로는 없고 잽만 날리다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칙대로 살면 바보 되는 세상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의 쾌감이 있느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말 그대로 모의 훈련이 끝나면 만사 원점으로 돌아갈 판인데...이 안전이 보장된, 그래서 애들 장난의 어른 버전과도 같은 해프닝의 풍자적 공명은 큰 스크린에 걸맞지 않게 쪼잔하게 띵띵 울리다 마는 느낌이다. 볼일 보고 휴지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뒤 엉거주춤 느슨하게 팬티 다시 걸쳐 입고 그냥 나온 기분이랄까? 그것이었다. 이 어정쩡한 코미디에서 딱히 스트레스를 풀지도 못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을 챙기지도 못한 이유는.

TAG 라희찬, 바르게 살자, 장진, 정재영,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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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맥빠진 흥행1위

박스오피스 헤집기 2007/10/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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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오피스 관련 기사를 쓰면서 순위 매기기가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 같은 때다. 안그래도 지난달의 추석 극장가가 대목이라 부르기에도 뻘쭘한 부진을 보였는데, 이후로도 3주 연속 관객수가 줄어들고 있다. 극장가 경기가 참으로 민망한 상황이다.

9월 마지막 주말 서울 관객수는 전주말 대비 27%나 빠졌다. 허진호 감독의 기대작 <행복>이 개봉한 10월 첫주말에도 이같은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 또다시 2% 관객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주말에는 여기에서 15%가 또 줄었다.

추석 극장가의 부진 여파는 이렇듯 10월 극장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절적 요인이나 다른 문화 상품의 부상 등 외부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때아닌 극장가 불황의 원인은 결국 콘텐츠의 부재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딱히 대규모 관객들을 극장으로 견인할 초특급 기대작이 없다는 얘기다. <바르게 살자> <궁녀> <어깨너머의 연인> 등 한국영화 세 편이 동시에 간판을 내거는 이번주말은 좀 다를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만족시킬 '힘센' 견인차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200만을 넘긴 <사랑>에 이어 흥행 비교우위의 바통을 이어받은 <행복>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관객 동원수는 힘겹게 100만이다. 2주 연속 1위작이 개봉 열흘만에 100만이라면 '흥행 질주' 따위의 수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만큼 시장이 얼어 붙었다는 얘기다.

2위 이하로는 도토리 키재기다. <내니 다이어리> <러시아워 3><비커밍 제인> <브레이브 원> <카핑 베토벤> 등 5편의 외화들이 각각 3만 5천 명 안팎의 서울 관객을 모으며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모두들 고만고만한 흥행세다. 

서울 관객수 기준 주말 흥행 순위(2007.10.12~14)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서울/전국)         서울 주말        전국 누계
==============================================================================
1위             행복                           74/331                       70,400           1,004,900
2위        내니 다이어리                   45/195                       39,700             419,900
3위          러시아워 3                      49/238                       37,000             598,000
4위        비커밍 제인                      49/193                        36,000            103,000
5위         브레이브 원                     38/122                        35,400             97,500
6위         카핑 베토벤                     39/131                        34,600             95,600
7위           사랑                             49/263                        21,900         2,033,100
8위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30/152                        19,300             68,000
 

TAG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관객수, 내니 다이어리, 러시아워3, 박스오피스, 브레이브 원, 비커밍 제인, 사랑, 주말 흥행 순위, 카핑 베토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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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폐막에 부쳐] 욱일승천의 대가는 무기력?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0/11 11:09

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STAFF’이라고 적힌 아이디 카드를 받았다. 남포동 야외무대 행사의 사회자를 맡게 돼 영화제 측에서 나름 배려를 해준 것이었지만, 왠지 생소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언제나 ‘PRESS’라고 적힌 아이디 카드를 목에 걸고 다닌 나로선 왠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다니는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참 묘한 게, 스탭 아이디를 달고 다니니 나 자신이 영화제측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거리감을 유지하며 영화제 진행의 이모저모를 따져야 하는 ‘기자의 임무’보다,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열성을 다해야겠다는 괜한 책임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사람이 이래서 참 간사하다.

영화제 기간 중 점심을 함께 한 후배 기자가 젊고 에너지 넘치는 저널리스트답게 날카롭고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올해 영화제의 문제점과 허점을 파고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기무라 타쿠야가 영화 홍보하려고 온 걸 영화제까지 나서서 멍석을 깔아줄 필요가 있나 싶어요.” “오픈시네마에 그 사람 영화가 초청됐으니까 온 거지. 그걸 그렇게 색안경 끼고 볼 필요가 있을까?” “영화제가 상업 영화 홍보의 장은 아니잖아요.” “홍보의 장은 아니지만, 홍보가 금지된 장도 아니지.” 굳이 내가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그의 문제 제기에 변명 비슷하게 대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왜 이러지? 목에 걸린 스탭 아이디가 무슨 절대반지도 아닌데.

기자로서는 올해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8번째로 찾았다. 처음엔 상영 사고나 통역 미흡 등 운영상의 작은 문제점도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혹은 대단한 국제적 망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침소봉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상영 사고가 났다고 하면, “뭐 그 정도야…영화제에서 상영 사고 한 두 건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하면서 넘어가게 됐다. 해운대가 수천만 원 짜리 대형 파티로 들썩이고 있는 데 대해 혀를 끌끌 차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적어도 부산에서만큼은 축제로서의 영화제와 산업 박람회로서의 영화제라는, 별도의 기능이 공존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기자로서의 시야가 넓고 윤택해진 건지, 펜촉이 무뎌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된 것은, 내 인식이 변화해서라기보다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행사가 기존의 틀과 잣대를 들이대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커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한 변명이 될 것이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이 거대한 국제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