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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07/11/30 반전 스릴러를 닮은 2007 대선
  2. 2007/11/28 닯고 싶지 않은 '아저씨 증후군' 톱10
  3. 2007/11/28 미녀는 괴로워? 뚱녀는 즐거워!
  4. 2007/11/26 <세븐 데이즈>의 놀라운 흥행 반전
  5. 2007/11/26 새벽 (학원가)의 황당한 저주
  6. 2007/11/23 '올바름'이라는 낡은 가치
  7. 2007/11/20 <베오울프> 수능특수 흥행 1위
  8. 2007/11/19 <베오울프>를 보고 부시를 떠올리다
  9. 2007/11/17 로맨스 영화 속 사랑의 발효
  10. 2007/11/17 양조위와 그를 추억함
  11. 2007/11/13 야해서 흥행한들 대수인가?
  12. 2007/11/13 제이슨 본이 보지 못한 모스크바
  13. 2007/11/13 에디트 피아프의 부활 <라비앙 로즈>
  14. 2007/11/09 세상엔 영화 말고도 분노할 게 많다 (2)
  15. 2007/11/08 로맨스 영화의 '삐리리' 법칙
  16. 2007/11/05 내 마음 속의 왕가위를 추억하며

반전 스릴러를 닮은 2007 대선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1/30 12:02

스릴러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은근히 반전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걸작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뒷통수를 세게 때리는 의외의 반전이 영화 말미에 멋지게 기다리고 있다면, 설령 앞서 살짝 지루함과 짜증을 느꼈던 관객이라도 흔쾌히  면죄부를 발행한다.

사람들이 반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예상대로 흐르는 이야기가 지루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삶은,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돌발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직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지금의 상황을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 놓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혹은 거꾸로 반전에 의해 상황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급회전하게 되더라도, 그 또한 삶의 단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영역에서 불행의 반전은 행복이고, 가난의 반전은 부의 획득이며, 사랑의 반전은 이별이 될 것이다. 불합리한 세상에 구역질이 난다면, 우리는 좀더 거시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정 부패의 반전은 정의와 양심이며, 독재의 반전은 민주주의이고, 분단의 반전은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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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클레이튼> 토니 길로이, 2007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원제 STORY, 황금가지)에 따르면, 반전의 쾌감은 기대와 결과 사이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증대한다. 때문에 가장 큰 반전은 영화의 절정부에 자리잡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흐름을 일순간에 전복시킴으로써 관객을 얼얼하게 만들기 위해선 결말 직전에 반전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까닭이다. 최근 개봉한 <세븐 데이즈>나 할리우드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이같은 반전의 미학을 비교적 훌륭하게 구사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드라마틱한 반전의 미학을 굳이 영화에서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세상이 온통 반전 스릴러이기 때문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선이 결말 직전, 즉 절정에 이르면서 'BBK 주가 조작 사건 수사 발표'라는 의미심장한 반전이 예고되고 있다. 한쪽에선 싱거운 반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한편, 또 한쪽에선 그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초강력 반전이 되기를 노골적으로 고대하고 있다. 기대와 결과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반전의 효과는 증대될 게 분명하다. 감독을 맡은 검찰이 어떤 반전을 준비했을까, 숨이 꼴깍 넘어간다. 계약서와 도장이라는 '복선'이 이 반전에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 조마조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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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올리버스톤, 1996

대선이 반전 스릴러를 닮았다는 것은 씁쓸한 노릇이지만, 동시에 흥미롭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한 나라의 권부를 결정하는 일을 불과 몇 십일 앞두고 거대한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올리버 스톤의 <JFK>나 <닉슨>을 능가하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정치 스릴러가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매일 뉴스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

아무래도 지난 2002년부터 대한민국 대선은 반전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국민들에게 흥미진진한 볼거리와 역전의 드라마를 함께 선사하겠다는, 위정자들의 엔터테이너적 발상이 이토록 가상한데, 누가 이번 대선을 재미 없다 나불대는가.

이 흥미로운 반전 스릴러의 최종 결말은 12월 19일 알 수 있다. 다만, 유권자들이 그 순간의 반전을 연출할 '감독'이 될지, 결말을 관조할 '관객'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최고의 반전이 아니겠는가.

TAG BBK 주가 조작 사건, JFK, 닉슨, 대선, 마이클 클레이튼, 반전,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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닯고 싶지 않은 '아저씨 증후군' 톱10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1/28 21:29
한국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어감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줌마'가 아닐까 싶다. 아줌마가 어때서?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상하게도 아줌마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될 때가 많다. 억척성과 천연덕스러움, 또는 매너 상실이라는 요소로 아줌마들을 특징화하고 조롱하는 농담들까지 떠돌 지경이다. TV매체들은 안그런 척 하면서 그런 분위기를 더욱 조장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아줌마 보다 아저씨들이 더 심각하다. 더더욱 내 자신이 내일 모레 불혹을 앞둔 입장에서, 내게 아저씨들의 '안습 백태'는 일상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나 역시 아저씨가 되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죽어도 닮고 싶지 않은, 나름대로 생활 속에서 체득한 아저씨 증후군 톱10을 뽑아봤다.


1. 식당이나 서비스 업소 종업원에게는 일단 반말을 한다.
-->여자 종업원한테는 무조건 '언니'라고 부른다.

2 .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골프 스윙을 연습한다.
 -->특히 사우나에서 벌거 벗은 채 하는 스윙은 가관이다.

3. 전철에서 '쩍벌' 다리로 수컷 본능에 충실하게 '나와바리'를 확보한다.
 -->가운데를 막대기로 팍 찔러 버리고 싶다.

4. 술자리에서 폭탄주 돌릴 때만 남녀 평등을 부르짖는다.
-->요즘 남자보다 술 센 여성들 많다. 그러다 큰 코 다친다.

5. 두번 이상 술자리를 하면 형 아우 하자고 한다.
-->사돈에 팔촌 건너 건너까지 연결시켜서 필사적으로 인맥을 확보한다.

6. 운전석에만 앉으면 전투적이 돼 '개새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본인도 가끔 개처럼 운전하면서.

7. 운동할 때 반바지 차림에 종아리까지 바짝 올린 검은 양말을 신는다.
-->운동복 상의를 하의 안에 넣어 안그래도 나온 배를 팽팽하게 과시하기도 한다.

8. '누가 뭐래도 박정희 때가 좋았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에 끌려가서 한 일주일 고문 당하고 나오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9. 휴대폰을 무전기로 착각하고 큰 소리로 통화한다.
-->내 경험상 휴대폰 매너는 중년 아저씨들이 가장 없다.
 
10. 신문에서 읽은 지식이 꺼낼 수 있는 화제의 전부다.
--> 처세술이나 재테크 관련 서적 한 두권이 연간 독서량의 전부다. 

#Bonus. 내 직업이 영화 기자라고 하면 박철과 옥소리 사건의 진실이 뭐냐고 묻는다.
-->나 연예 기자 아니거든요?!

내가 사는 집에서 한 20분 걸어가면 늘 단골집처럼 드나드는 포장마차가 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다. 이집 아저씨는 진국이다. 깡 마른 체구에 단골 손님이 와도 립서비스용 친절을 부릴 줄 모르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분이지만 가끔 사람 좋게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 인간성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아무리 포장마차라 해도 휘뚜루마뚜루 안주를 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가장 신선한 재료를 적당한 양만 들여와 정성스레 손질을 한다. 그래서 늦게 가면 안주들이 동나기 일쑤다. 싱싱한 생선을 세심하게 다루는 아저씨의 칼질은 <식객> 저리가라다. 대신 안주가 무척 더디게 나온다는 단점만 참을 수 있다면, 그 집 회맛은 왠만한 일식집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맛있는데다 가격도 경제적이다. 이를테면, 그는 내가 닮고 싶은 아저씨 가운데 한 분이다. 나대지 않고도 최상의 결과물로 실력을 증명하는 것. 설레발치지 않고도 사람을 끌어 들이는 넉넉한 품성. 그가 얼마전에 '생존권 사수'라는 글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장사를 하시길래,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통과하고 계신가 했는데, 결국 한동안 포장마차가 서지 않았다. 보름 가까이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그 주변을 기웃댔다. 며칠전 포장마차가 다시 섰다. 예의 환하고도 수줍은 얼굴의 아저씨가 열심히 횟감을 다듬고 있었다.
TAG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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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뚱녀는 즐거워!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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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헤어 스프레이>를 언론시사회에서 봤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네 번 감탄했다. 첫번째, 뚱녀 역할로 나온 니키 브론스키.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등교길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장면부터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노래 잘한다. 두번째, 내년이면 쉰살이 되는 미셸 파이퍼. 인종 차별주의를 상징하는 악역을 자처해 자신의 매혹을 혐오로 탈바꿈시키는 탁월한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세번째, 존 트라볼타. 30년 전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육감적인 춤 실력을 뽐내며 스타덤에 오른 바 있는 그 춤의 대가께서 친히 주인공의 뚱보 엄마 역할로 출연해 흔쾌히 엉거주춤 스탭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 <헤어 스프레이>. 뮤지컬 특유의 경쾌함 속에서도 자칫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정치적이고도 교훈적인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들이대는 배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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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정도라면, <헤어 스프레이>에 대한 상찬을 위해 더 긴 미사여구를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승전결적 논리 전개나 구구절절 설명에 강박을 가지고 계신 독자들을 위해 몇마디 더 보태자면, 이 앙증맞게 귀여운 뮤지컬 영화는 재미있다. 무엇보다 뮤지컬 본연의 미덕을 잊지 않으므로 눈과 귀가 즐겁다. 그리고 (요즘 영화평에다 이런 말 쓰면 마치 시류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기 일쑤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미녀는 괴로워>처럼 굳이 '성형'이라는 우회 작전이 아니더라도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똥침을 이처럼 통렬하게 작렬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할리우드의 축적된 장르 내공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 증명을 수행하기 위해 <헤어 스프레이>는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이자 시대 배경인 1962년의 아이콘과도 같은 헤어 스프레이는 영화 속에서 외모 지상주의와 위선적 인종 차별주의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헤어 스프레이, 즉 '가오 잡기 위해 일부러 부드러운 머릿결을 딱딱하게 만드는 가스'의 조장된 신화를 뚫는 힘은 바로 인간의 원초적 미덕인 유연함을 사랑하는 것이다. 유연함이란 결국 '다름'을 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소수자의 포용력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설파한다. 포용과 투쟁의 결과물로써 진정한 화합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뮤지컬 장르 본연의 에너지로 극대화함으로써 자칫 지루한 계몽으로 흐를 수 있는 메시지는 훨씬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된다. 감독이자 안무가 아담 쉥크만은 그걸 잘 알고 있는 게 틀림 없다.

이영자도, 조정린도, 하다 못해 빅 마마도 살을 빼야 하는 말라깽이들의 세상이다. 신나게 들썩이고 한참 웃고 나면 곱씹을만한 묵직함이 가슴에 남는다. 설령 이 판타지와 현실과의 괴리에서 얻어지는 씁쓸함일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해 한번쯤 고민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확보한 최고의 미덕이다.
Tip: <헤어 스프레이>는 알려져 있다시피, 1988년 존 워터스가 감독한 영화를 2002년 뮤지컬로 각색한 것을, 다시 영화화한 것이다. 진정한 원소스 멀티유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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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헤어 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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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데이즈>의 놀라운 흥행 반전

박스오피스 헤집기 2007/11/26 18:29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다. 첫 주말 4위에서 한 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로 세 계단이나 치고 올라오는 일 말이다. 반대의 경우는 숱하게 봤지만, 박스오피스 기사를 7년 가까이 쓰면서 이런 일은 처음 본다. 놀랄만한 흥행 반전이다. <세븐 데이즈>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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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데이즈>는 첫 주말 7만 9천여 명의 중급 흥행으로 오프닝을 열었다. 순위는 4위였지만 전국 관객수가 37만여 명으로 나쁘지 않은데다 초기 관객들의 입소문이 워낙 좋아 이미 상승세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도약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입소문의 반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케팅에 진절머리나게 속아온 관객들이 드디어 영화의 검증된 품질에 신뢰를 보낸 사례라 하겠다.

반대의 경우는 <베오울프>다. 첫 주말 15만 4천여 명을 모으며 서울 관객수 기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만, 한 주 만에 4위로 급락했다. 정확하게 <세븐 데이즈>와 자리 바꿈을 한 것이다. <베오울프> 역시 비주얼이나 내용 면에서 미덕이 적지 않은 영화지만, 영화의 품격을 드러내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오프닝에 사활을 건 '눈가리고 아웅'식 마케팅이 자초한 결과라고밖에는 분석할 도리가 없다.

<식객>과 <색, 계>는 롱런 레이스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200만 고지를 점령한 <식객>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면서도 여전이 제법 위력적인 관객 동원력을 선보이고 있고, <색, 계> 역시 지난주와 똑같은 수의 서울 관객을 모았다. 전국 관객수는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해서 시나브로 100만 돌파다.

일주일짜리 치고 빠지기 흥행이 전형화된 극장가에서 모처럼 뒷심 흥행작이 나오는가 하면 롱런 흥행작도 두 편이나 나왔다. 고무적임과 동시에 관객수가 줄어드는 비수기 극장가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서울 관객수 기준 주말 박스오피스(2007.11.23~25)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서울/전국)  서울 관객수   전국 누계
===============================================================
1위   세븐데이즈     60/290              112,500      910,400
2위     식객         65/309               85,000    2,451,000
3위    색, 계        62/220               83,000    1,032,000
4위   베오울프       68/229               62,100      812,500
5위    쏘우 4        45/214               44,300      180,100
6위  골든 에이지     47/195               37,000      131,000
7위  라비앙 로즈     39/144               21,200       61,000
8위   스카우트       51/270               13,000      27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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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스오피스의 스코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관련이 없으며, 별도 취재를 통해 확인한 각 영화의 실제 동원 관객수(근사치)임을 밝힙니다.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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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학원가)의 황당한 저주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1/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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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황당한 저주> 에드가 라이트 감독, 영국, 2004


어김 없다. 오늘도 좀비들은 거리를 습격했다. 새벽 1시. 똑같은 옷을 입은 좀비들이, 그들 세계의 관용어인 것으로 보이는 '존나'라는 단어가 꽤 많이 섞인 언어로 재재 거리며 사방 팔방의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다. 쾡한 눈, 무척이나 허기져 보이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대로 주변 음식점들을 기습한다. 별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듯 이미 거리 바깥까지 가판을 내어 '붉은 물이 든' 무언가를 잔뜩 내놓은 음식점들. 좀비들은 선혈과도 같은 붉은 국물을 뚝뚝 흘리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삽시간에 인도를 장악한 좀비들은 마침내 차도를 장악한 수 십대의 버스 안으로 쓸려 들어간다. 일군의 다른 좀비들은 차도를 거의 완전히 막고 늘어서 있는 자가용차에 실린다. 그렇게 좀비들이 사라졌지만, 방금 그들이 쏟아져 나왔던 건물 안에는 여전히 소수의 좀비들이 남아 있다.

건물 벽에는 수 백여 명의 좀비들이 나란히 찍혀 있는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위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외고 2백명, 민사고, 영재고 5명 합격' 이건 필시 좀비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암호임에 틀림 없다. 옆에는 또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 '왜 12살에 토익을 시작해야 하나?" '12'라는 숫자와 '토익'이라는 단어의 연관성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역시 좀비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암호일 것이다. 흠...글귀 너머 12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좀비가 여전히 학원 로비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새벽을 지새우며 정글의 법칙을 새기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꽤 유명한 학원가 밀집 지역이다. 약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 양쪽에 빼곡하게 학원들이 들어차 있다. 간혹 인적이 드문 늦은 밤 거리에서 호젓한 산책을 즐기곤 하는 나는, 부지불식간에 학원가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당황하곤 한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갑자기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학원 수강생들의 인파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고교생이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중학생들이다. 그리고 이제 갓 중학교에 들어가 아이 티를 벗지 못한 학생이나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끼어 있다.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좀비'에 비유했으니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내 눈에 가끔 그들은 좀비(살아 있는 시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새벽 1시가 넘는 시각에 집이 아닌 학원에서 공부를 한 뒤 떼로 학원 버스나 부모가 몰고 나온 승용차에 실려 귀가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도저히 내가 가진 '상식의 영역'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래서 학교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침 8시 등교라면 적어도 7시엔 일어나야 할텐데, 집에 가서 씻고 어쩌고 하면 2시에나 잠들텐데, 그러면 5시간도 못자고 학교에 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본 TV 시트콤에서 학원에 와서 졸고 있는 학생에게 강사가 "너 학교에서 뭐 하고 학원 와서 자!"라고 호통 치는 모습은, 소름 끼치도록 통찰적인 대사였던 셈이다.

지금 사교육의 팽창이 어느 지경까지 와 있느냐를 교육 현실의 구조적 모순과 연계해 시시콜콜 따지고 있는 일은 멍멍이 귀에 맹자왈 공자왈 하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니, 과문한 나까지 가담할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다만 이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나는 제 정신이 아닌 것을 넘어 미쳐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 눈 맑아야 할 우리의 아이들을 새벽 거리의 쾡한 좀비로 만들고 있는 현실이 무섭고 식겁할 뿐이다. 얼마전에도 한강 남서쪽 좀비들의 반란이 신문 지상을 뜨겁게 달궜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채택하지 않은 교육 주체들의 사고 체계에는, 이기느냐 지느냐, 밟느냐 밟히느냐, 목소리를 키우느냐 줄이느냐, 미느냐 밀리느냐, 붙느냐 떨어지느냐의'정글 함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니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면 속 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무섭다. 이런 상황이 내일도 계속될 것 같기 때문에 무섭다. 쾡한 눈으로 새벽을 지새운 결과,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유일무이한 생존 원리로 체득하게 된 꼬마 좀비들이 미래의 권력을 쥐게 될까봐 무섭다. 그래서 훔치고 떼먹고 속이고 말바꾸기로 일관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글 법칙의 달인들, 죽여도 죽여도 선거때마다 되살아나 비치적거리며 걸어오는 저 늙고 흉측한 좀비들의 유전자를 상속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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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이라는 낡은 가치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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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양심'이나 '정의'라는 단어처럼 낡아빠진 어감으로 다가오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성장과 성공 지상주의가 뼛속 깊이 스며든 지금,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장땡이고,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합격만 하면 그만이다. 어르신들은 돈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현실은 돈이 에헴 하는 세상이다. 어떻게 벌었든 돈은 권력이고, 권력은 치부마저 별 게 아닌 것으로 둔갑시킨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게 당연한 곳, 그 살풍경 속에 양심이나 인륜, 도덕이라는 말은 순진한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낡아빠진 영화다. 여기저기서 양심이 밥 먹여주냐고, 정의가 돈 벌어주냐고 부르대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생뚱맞게도 양심과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거대하고 추악한 진실 앞에서 한 인물의 양심이 발화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유독성 제초제를 팔아 왔던 'U/노스'라는 거대 다국적 기업은 피해 주민들의 집단 소송을 무마하려 한다. 그리고 로펌의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이 회사의 승리를 위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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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아차리고 갑자기 U/노스의 변호를 중단해 버린 실력 있는 변호사 아서 에든스(톰 윌킨슨)는 그를 설득하러 온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한다. "마이클, 우린 그저 청소부일뿐이야." 그렇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 해결사들에겐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더러운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는 거액의 수임료이지만,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대가는 참혹하기 때문이다.

도박 빚에 골칫덩어리 동생의 빚까지 떠안게 돼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른 뒷처리 전문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유혹과 위협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아서의 입을 틀어 막으러 갔다가 진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직감하는 친구다. 당장 돈이 급하지만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줄 분별할 수 있는 '시비지심'을 지녔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양심의 작동이 그를 올바르지만 위험한 선택으로 이끈다.

유치무쌍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할리우드에서도, 나는 이런 영화를 만날 때마다 그 저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기치 나부끼는 가운데서도,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낡아 빠진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지는 영화들 말이다. <시리아나> <굿 나잇 앤 굿 럭> <블러드 다이아몬드> <굿 셰퍼드> 등 개인의 실존에서부터 사회와 국가, 세계로 시야를 넓히며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영화 매체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게도 '저들은 노는 물이 다르군'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스스로 연출한 <굿 나잇 앤 굿 럭>과 석유 자본과 결탁한 정권의 부도덕성을 파헤친 <시리아나> 등 유독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에 참여해 온 조지 클루니의 '명석한 선택과 연기'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본 얼티메이텀>의 '기가 막힌' 각본을 쓴 바 있는 감독 토니 길로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자신의 첫연출작에서 유감 없이 발휘한다. 완벽에 가까운 스릴러적 이야기 안에 녹록지 않은 메시지를 녹여 낸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치밀한 장르적 짜임새 안에서 시너지를 얻는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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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길로이 감독(왼쪽)과 조지 클루니


이 혀를 내두를만한 걸작에는 예의 혀를 내두를만한 대가들이 배우로, 프로듀서로 동참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시드니 폴락(아래 사진)이 로펌의 사장으로 등장하며, <오션스 13>의 스티븐 소더버그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안소니 밍겔라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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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마이클 클레이튼, 시드니 폴락, 안소니 밍겔라, 조지 클루니, 토니 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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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 수능특수 흥행 1위

박스오피스 헤집기 2007/11/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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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3D 퍼포먼스 캡처 애니메이션 <베오울프>가 수능 특수를 누리며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서울 관객수 기준)에 올랐다. 서울 관객 15만 4천 명, 전국 누계 53만 4천 명. 이 정도면 대박급은 아니더라도 요즘 같은 비수기에 꽤 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스코어다. 국내 관객들은 새로운 비주얼적 체험에 대한 호기심과 열광이 비교적 크다는 것을, <300>이나 <트랜스포머> 에 이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함께 개봉한 한국 스릴러 영화 <세븐데이즈>는 모처럼 평단과 관객들의 '일치 단결' 호평에도 불구하고 순위는 4위에 그쳤다. 그러나 첫 주말 전국 누계 37만 명이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입소문이 괜찮으니 상승세를 기대해볼 만하다.

반면,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는 <식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스크린수에도 동원 관객수는 <세븐데이즈>의 반타작 수준에 머물렀다. 코미디로 포장이 돼 있긴 하지만, 스포츠 영화인지 휴먼 드라마인지 영화의 장르적 성격을 종잡을 수 없었다는 게 패착으로 보인다. <YMCA 야구단>과 <광식이 동생 광태>로 두 번의 연타석 안타를 친 바 있는 김현석 감독으로선 첫 내야 땅볼 아웃을 기록하게 된 셈.

전국 관객수로는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식객>은 바야흐로 2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예전 같으면 200만은 중급 흥행 정도의 스코어였지만, 요즘 영화계가 죽을 맛이니 200만 넘었다 해도 어화 둥둥 축제 분위기다. 떼돈은 못벌었지만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았다는 위안인 셈이다. <사랑> <바르게 살자>에 이어 이 영화 <식객>까지 200만 클럽의 영화들이 시사하는 흥행 비결은 여전하다. 장르가 어떻든, 쉽게 다가가는 영화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안 감독의 <색, 계>는 꾸준하다. 전주에 비해 순위는 한 계단 내려섰지만 드롭율(관객 감소율)이 미미한 수준이어서 롱런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2007.11.16~18)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서울/전국)  서울 주말       전국누계
============================================================================
1위       베오울프            89/276            154,000         534,000
2위        식객               75/330            116,000       1,974,000
3위       색, 계              58/216             83,000         638,000
4위      세븐데이즈           64/300             79,100         370,300
5위       스카우트            62/320             43,000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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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스오피스의 스코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관련이 없으며, 별도 취재를 통해 확인한 각 영화의 실관객수(근사치)임을 밝힙니다.cinemAgora
TAG 박스오피스, 베오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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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를 보고 부시를 떠올리다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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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민감 체질의 독자들에겐 스포일러가 될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의 영화 마케팅은 확실히 문제가 많다. 뻥튀기야 광고의 속성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필수 정보를 숨기는 경우라면, 그건 부도덕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믿는다. 하물며 영화다. 영화를 팔면서 관객들을 속이는 것은 양심 문제다. 돈이 좋다지만 그렇게까지 장사하면 욕 먹는다. 게다가 그건 관객 이전에 영화를 모욕하는 짓이다.

<베오울프>의 광고나 포스터에는 이 작품이 3D 퍼포먼스 캡처 영화라는 표시가 없다. 다른 정보를 통해서도 이 작품이 CG가 많이 포함된 실사 영화로 오인될 여지는 적지 않았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홍보면에선 오히려 불리한 정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실사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선택한 많은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당혹감이나 장르적 위화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실제로 이 영화의 네티즌 리뷰는 실사로 알고 봤다가 애니메이션이라서 실망했다는 불만들 투성이다. 그래서 평점도 바닥권이다(그러므로 요즘 인터넷 평점은 거의 마케팅 방법론에 대한 평점이나 다름 없다). 이래서야 영화의 진면목이 제대로 공유될 수 없다. 편견과 배신감이 영화를 압도하는 현상의 대부분은, 마케터들이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영화 마케터들이여, 제발 푼돈 벌자고 영화를 모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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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천박한 유통 논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에 정당한 가치 부여를 하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베오울프>는 놀라운 영화다. 퍼포먼스 캡처 기술의 진일보에 대해선 이미 익스트림 무비가 자세히 논한 바 있으니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나는, 비단 표현력의 진화만이 이 영화에 쏟아부을 수 있는 상찬의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세 게르만 서사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어울프>의 이야기는 미묘하게 은유적이다. 노골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부시 정권을 처연한 시선으로 조롱하는 영화다(라는 논지를 나는 지금부터 펼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혀 끌끌 차실 분들은 지금 읽기를 중단하고 나가시기를 권한다. 판타지든 역사물이든 영화는 결국 동시대성의 반영이라는 데 동의하신다면 계속 읽어도 좋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영웅 베오울프의 형상은 부시스럽다. 그는 허풍장이며, 힘의 논리에 경도된 자다. 황금 나팔의 화려함에 현혹되고, 마초 중에 마초이면서도 안고 싶은 여자 앞에선 한 없이 연약해지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3마리의 바다 괴물과 싸운 일화를 늘어 놓으며 9마리라고 떠벌리며, 자신의 일화를 전설로 만드는 것이 권력의 작동 원리라는 것을 영악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다. 프로파간다의 효용을 간파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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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보다 더 흉측한 괴물 그렌텔을 무찌른 뒤, 그는 그렌텔의 어머니까지 물리치러 갔다가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에 홀려 간음한다.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드래곤으로 화해 왕이 된 또 다른 괴물 베오울프의 나라를 불태운다. 드래곤은 외친다. "아버지의 죄, 아버지의 죄!"

나는 이걸 이렇게 해석해 봤다. 폭력으로 세워진 나라 미국은 그 피의 저주를 대물림한다. 미국은 한때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지원했던 후세인을 독재자로 몰아 전쟁을 일으킨 뒤 잡아 죽였다. 아버지 부시가 일으킨 걸프전을 아들 부시가 이라크 전쟁으로 상속 받은 결과다. 드래곤의 반격은 9.11 테러를 상징한다. 죄 없는 시민들이 묵숨을 잃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괴물 왕이 오래전에 지은 죄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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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의 충복이자 그에 이어 왕위를 물려 받은 위그라프 앞에 예의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그렌텔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그리고 '부와 저주의 상징' 황금 나팔로 그를 유혹한다. 황금 나팔은 위그라프의 손에 쥐어져 있다. 혹자는 속편을 예고하는 뻔한 결말이라고 했으나 영화가 위그라프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은 채 끝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일뿐더러 탁월하게 시사적이다. 굴복할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 진화된 기술력으로 재현한 영웅 신화를 통해 할리우드가 자신들의 조국에게 은근히 묻는다. 폭력의 악순환과 저주의 상속을 끝낼 것인가 이어갈 것인가. 모두가 아는 프로파간다의 허상을 계속 우길 것인가 말 것인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원적 저주를 다음 세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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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게르만 서사시, 베오울프, 부시, 퍼포먼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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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영화 속 사랑의 발효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1/17 10:34

사랑은 김치와 같다. 익어야 제 맛이다. 물론 겉절이 좋아하는 분들 계시겠지만, 삭힌 홍어의 맛을 아는 자만이 삼합을 논할 수 있는 것처럼, 익은 사랑의 맛을 아는 자만이 삐리리의 순간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선언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이 익기 위해선 얄궂게도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삐리리의 전류가 흐른 뒤, 초보 연인들에겐 시련이 닥친다. 그 시련은 여러가지 양태로 사랑의 숙성 과정을 끊임 없이 괴롭힘과 동시에 숙성시킨다. 아이러니지만 그렇다. 고통은 사랑을 방해하고 한편으로 돕는다.

우리가 여러 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보는 고통의 사례는 바로 양가 부모의 반대다. 흔히 TV 드라마에서 상투적으로 써 먹는 설정이다. 요거 좀 낡았다. 요즘 세대 부모가 반대한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거대한 유산에 신경 쓰는 마마보이, 마마걸들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부모들도 개화돼 애들 연애사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시기는 지났다. 오히려 서른이 넘도록 시집 장가 못가고 있는 자식들 등 떠민다. "길거리에 치이는 게 여자고 남자인데, 넌 그 흔한 연애도 못하고 뭐하니, 이 화상아!" 혹은 "아무하고나 빨리 좀 가라!" 심지어 이미 혼인한 자식에게 간혹 새 삶을 종용하는 급진적인 부모들도 적지 않다. "김서방 못쓰겠더라. 이혼해라." 그러니 이런 설정, 영화에선 안 쓰는 게 지당하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사건과 첨예한 갈등의 사례를 통해 삶을 은유하는 매체다. 부모님 반대는 요즘 사건도 아닌 것이다.

또 한가지 흔한 것. 실 생활에서도 아마 가장 흔한 고통일 것이다. 성격 차이다. 요거 별 것 아니겠지만 쥐약이다. 양식 먹고 싶은데 일식 타령하고, 지하철 타자 하면 버스 타자면 처음엔 그래 그래 하다가도 은근히 짜증이 돋는다. 잠 잘 때 사랑해, 아침에 일어나서 사랑해,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해 들어야 되는 여자에게 무뚝뚝한 남자는 천벌이다.

흔하고 흔한 게 성격 차이니 이건 로맨스 영화의 고통 소재로 삼기엔 함량 미달이라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말 된다. 왜? 알콩달콩의 드라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로맨스 영화들은 현실적인 관계들을 선호한다. 부모님 반대, 그딴 낡은 거 아니라면 성격 차이로 인한 티격태격은 재미 있다. 무엇보다 웃음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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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의 리지와 미스터 다아시. 서로들 잘난 선남 선녀다. 리지는 코가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의 대명사다. 사랑이 없는 결혼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자유 연애의 신봉자다. 그러던 그녀가 혼인 시장의 '대 놓고 삐리리 조장 행사'인 댄스 파티에서 다아시를 만난다. 멋있는 녀석이다. 끌린다. 어김 없이 스파크가 터진다. 그런데 오해가 생긴다. 리지는 그가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말을 엿듣는다. "봐줄 만하지만 날 매료시킬 정도는 아냐." 이거, 직격탄이다. 게다가 다아시가 그녀의 가문을 업신여겼다는 혐의를 사실 확인도 안하고 믿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를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속물로 단정한다. 그리고 예의 티격태격. 지금 같으면 핸드폰으로 몇 번 통화하면 풀릴 오해지만, 둘의 만만치 않은 성격은 첨예한 대립을 조장한다. 싸우다 정든다 하던가. 둘의 오해는 어느 억수같이 비오는 날, 키스 신공 한 방으로 눈 녹듯 사라진다. 오해가 풀린 탓도 있지만 다툼 속에서 서로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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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도 두 남녀의 성격 차이를 코믹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똑똑하고 젠틀하지만 체질적으로 연애를 못하는 대학 강사 황대우(박용우)앞에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미나(최강희). 데이트를 시작했지만 이 미나라는 여자 알다가도 모를 인물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성격 차이가 아니라 '성적 차이'다. 뻑하면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단정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모른다. 시쳇말로 개념 상실한 여자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뭔가 비밀을 숨겨 놓은 것 같은데, 황대우는 수컷적 본능적으로 코를 킁킁댄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녀의 키스에 뻑이 간다. 개념이고 나발이고 무소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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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차이는 그러나, 비교적 쉽게 극복될 수 있다. 더 큰 고통은 상대방이 안고 있는 내면의 상처다. 그리고 그 상처는 상대방에게 또 다른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니콜라스 케이지 아저씨가 지금보다 머리가 덜 벗겨졌을 때 찍은 걸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시라. 주인공 벤, 실직에 알콜 중독, 가족은 풍비백산. 덧 없는 인생이다. 라스베가스로 흘러든 그는 죽을 때까지 마시기로 작정한다. 그런 그에게 거리의 여자 세라가 나타난다.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조건이 있다. 서로에게 잔소리 안하기.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방어막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사랑이 깊어질 수록 잔소리도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러나 결국 둘은 각자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교훈! 상대방의 상처를 결코 방임하지 말라. 상처는 핥아 주어야 낫는다. 그리고, 그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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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 류이치가 감독한 일본 영화 <바이브레이터>도 마찬가지다. 환청이 들리는 병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작가가 여주인공이다. 어느날 편의점에 갔다가 준수하게 생긴 트럭 운전사에게 삐리리됐다. 다짜고짜 생면부지의 운전사가 모는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곤 함께 여행을 한다. 여자는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않을 뿐, 남자는 그녀가 품은 내면의 상처를 직감한다. 그는 캐 묻는 대신 보듬는다. 그녀에게 필요한 게 기대어 쉴 어깨라면 그는 흔쾌히 어깨를 내준다. 그 과정을 겪으며 여자는 서서히 잃었던 자아를 찾아낸다.

가장 많은 로맨스 영화에서 등장하는 고통의 설정은 무엇일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불치병이다. 그만큼 사랑의 숭고함과 영원성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기에 불치병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만 해도 <선물> <국화꽃 향기> <내 머리속의 지우개><사랑하니까 괜찮아> 등 신파 멜로물의 단골 소재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게 또 이 불치병이다. 그런데 왜 불치병은 하필 여자가 걸릴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 그렇다. 항구가 병이 들면 배는 옴짝달싹 못한다. 그게 순리다. 말 안된다고? 좀더 실질적인 이유를 대볼까? 멜로 영화의 주 관객층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감정이입을 유발하기 위해선 병든 남자보다 병든 여자가 더 설득력 있다.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할 이의 입장이 슬픈지, 사랑하는 이를 남기고 떠나야 할 이의 입장이 슬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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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최근작 가운데 <너는 내 운명>을 사례로 꼽았다. 이 영화는 지독한 신파 멜로다. 그런데 흥행에 빅 히트를 기록한 것은 순전히 이 없을 법한 이야기가 실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런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직도 존재하다니, 관객들은 그 사실에 흔쾌히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아시다시피 전도연이 연기한 은하는 직업 여성이라는 이유로 에이즈에 걸렸다. 석중(황정민)은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위대한 사랑은, 이들을 갈라 놓으려는 세상의 편견과 거대한 벽을 훌쩍 뛰어 넘는다. 우리들은 간혹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묻지 않던가. "나 병 걸려서 죽을 때 너 나랑 같이 있어 줄거지"? 죽음의 두려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같이 한 삶의 기쁨 때문에 사별조차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 필요한 진짜 이유라는 걸, <너는 내 운명>은 설파한다. 신파지만 울지 않을 수 없는 신파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우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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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은 복도 많지.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을 안더니, 최근작 <행복>에선 임수정을 차 버렸다(새로 찍는 영화에선 전지현이란다! 이런 된장!). 두 영화, 설정 면에서 비슷하다. 이번에도 여자가 불치병이다. 악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은희는 방탕한 생활 덕에 간경변에 걸린 영수한테 끌려 살림을 차린다. 한동안 깨 소금이 쏟아진다. 죽고 못 산다. 그런데 영수에게 딴 마음이 생긴다.  살신성인의 헌신으로 그의 병을 낫게 해준 은희가 정작 그 자신의 병 때문에 식사도 깨작깨작 하는 게 못마땅해진다. 이쯤 되면 인간 말종이다(남자 입장에선 살짝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헴). 불치병은 서로를 더욱 강한 연대의 끈으로 묶어주는 구실을 하지만, <행복>은 그 반대의 현실을 비추고 있어 잔인한 영화다.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끝끝내 신파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은희는 끝까지 영수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기로 한 약속을 지켜낸다. 그러나 그건 영수가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과도 같은 의식처럼 보인다. 은희는 영수에게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게 함으로써, 남은 생애에 결코 치유되지 않을 거대한 회한을 남겨준 셈이다. 회한으로 점철된 외로운 죽음, 그게 영수에게 남겨진 쳔형이다.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고통은 사랑의 이음동의어다. 고통에 굴복하면 사랑은 신기루가 된다. 극복한다면? 글쎄...조용히 곁에 찾아온 그 무엇이 일상의 매 순간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놓고 있음을 깨닫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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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라디오 '이승연의 시네타운' 출연 초고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앞으로 몇 번 더 연재할 생각이었으나 아쉽게도 속 좁은 필자가 궁합이 안맞는다고 판단한 시네타운 출연을 중단해 로맨스 영화 시리즈는 여기서 그만.^^                                                                                                cinemAgora
TAG 너는 내 운명, 달콤 살벌한 연인,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로맨스, 바이브레이터, 오만과 편견,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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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와 그를 추억함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1/17 10:33
 
<색, 계>의 양조위에 빠져든 분들 주변에 많다. 그들과 양조위의 매혹을 공유하기 위해 필자가 4년 전 <무간도>의 홍보차 내한한 양조위를 인터뷰한 뒤 FILM2.0 인터넷 사이트에 실었던 묵은 칼럼을 끄집어 낸다. 참고로, 글 중에 나와 함께 땡땡이를 쳤던 선배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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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언론사 스포츠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cinemAgora


영화 <씨클로>를 봤던 기억이 난다. 96년이었던가, 방송국의 스포츠 뉴스 AD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매일 밤 생방송을 위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게 고역이었던 차에 하루는 PD를 맡았던 선배가 제안을 해 왔다. 방송을 세 시간 여 남겨 놓고 갑자기 <씨클로>를 보러 극장에 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마침 저녁 경기가 없었던 날이었으므로 방송 준비는 대충 마무리 돼 있었던 지라 흔쾌히 선배를 따라 나섰다. 우리는 회사에서 약 10분 거리에 떨어진 극장에서 마지막 회 입장권을 사 <씨클로>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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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클로, 1995

한 해 전쯤 봤던 <중경삼림>의 강렬함을 잊지 못했던 나는 끈적끈적한 베트남 호치민시의 거리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매춘을 강요해야 하는 시인으로 분한 양조위의 그 비애 가득한 눈빛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을 고스란히 담아내던 그는 자신에게 드리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급기야 불꽃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 처절함과 처연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즈음, 문득 방송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영화는 끝날 줄 모르는데 시계를 보니 생방송 30분 전이 아닌가. 내 재촉에 못 이겨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난 선배는 끝내 극장 문을 나서지 못하고 작게 속삭였다. “엔드 크레딧 올라갈 때 뛰기 시작하면 방송 5분 전에는 회사에 도착할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보자. ” 바로 뛸 채비를 하고 문 옆에 달라 붙은 채 우리는 <씨클로>의 남은 부분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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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1994

다행히 그날 방송 사고는 없었다. 생방송 2분 전에 도착한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진행을 끝냈고, 영화도 보고 방송도 무사히 끝낸 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일은 다음 날 아침에 벌어졌다. 부장에게 불려 간 우리의 눈 앞에는 ‘선동렬, 10세이브’(로 기억된다)라는 대문짝만한 헤드라인의 스포츠 신문 세 장이 던져졌다. 우리가 <씨클로>를 보고 있는 사이, 당시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맹활약 중이던 선동렬 아저씨는 또 하나의 세이브를 올렸던 것이고, 생방송 2분 전에 도착한 우리에겐 당연히 그 뉴스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부장에게 실컷 깨지고 나오는 길에 선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양조위의 <씨클로>를 봤는데 이 정도면 약과지, 안그래?”

지난 화요일, 그 때 뉴스를 빼 먹어 부장에게 혼나게 만들었던 장본인, 그 끈적끈적한 비애감으로 온통 가슴 속을 헤집던 장본인을 7년여 만에 처음으로 직접 봤다. <무간도> 홍보차 한국에 온 양조위를 시내 한 호텔에서 인터뷰했다. 그에게 ‘내가 당신 영화를 보려고 얼마나 곤욕을 치른 줄 아느냐’며 옛 해프닝을 자랑처럼 늘어놓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인터뷰 일정에 쫓기는 그에게 그런 얘기 했다간 욕 먹기 십상일 듯 했다. 직접 만난 그는 꽤 왜소했다. 170센티미터가 넘지 않을 것 같은 키에 깡 마른 체구는 <화양연화>의 그 젠틀한 매력이 사기였군, 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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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000

턱과 코 밑을 듬성 듬성 덮고 있는 털이 아니었다면 “그 양반, 참 예쁘장하게도 생기셨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의 유약한 표정. 동료 배우 유덕화와 나란히 앉은 그는, 유덕화의 유창하고 또렷한 대답이 흘러 나오는 동안 손에 쥔 꼬깃꼬깃한 종이 한장을 양쪽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내내 만지작 댄다. 못 알아 듣는 중국어이니 망정이지, 질문을 해도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그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울컥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그 깊은 눈의 소유자는 같은 남자의 시선으로 봐도 확실히 매력적이다. 유덕화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그가 대답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난 슬쩍 슬쩍 양조위의 표정을 살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고심하는 듯한 그는 최대한 말을 아낀다. 그날 그의 말투는 꽤 진중하고 느렸는데, 그런데도 통역사는 그가 <영웅>의 흥행 소식을 전해 듣고 고무됐는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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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2002

생각해보니, 양조위의 매력은 그 본연의 모습이 그가 맡았던 영화 속 캐릭터들의 현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기 방에 팬티 차림으로 누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중경삼림>의 실연당한 순찰경, 표정 없는 얼굴로도 한 없는 고통을 표현하던 <씨클로>의 불행한 시인, 금지된 사랑을 앙코르와트의 구멍 속에 속삭여 잠가 버렸던 <화양연화>의 남자가 한 인물에 고스란히 녹아 거기 앉아 있었다. 그의 몸집과 표정은 그 자체로 세상의 질서에 지쳐 있는 비애감의 여러 스펙트럼을 미분해 받아 안고 있는 듯 보였다. 칸 영화제가 인정한 그 세계적 배우는 그렇게 당당하지도, 그렇게 세련되지도 않은 인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스타 배우들이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와는 전혀 상관 없는 표정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그것 자체가 엄청난 카리스마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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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2003

인터뷰 중 한국에서 40대 이상의 배우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데 대해 말들이 오갔는데, 유덕화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약간 흥분한 기색이었다. 또 한번 유덕화에게 미안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양조위의 견해는 조금 더 남다른 면이 있었다. 그는 “아시아 대중 영화 시장이 아이돌 스타 위주로 흐르다 보니 아시아 전체가 그런 경향을 갖게 되는 것 같다”면서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는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폭이 너무 좁은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배우로서 그의 자의식은 보다 넓은 범위의 조감력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인상. 게다가 차근 차근 작은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그의 말투는 주저함이 있거나 모호하지 않다. 오히려 명료하고 설득력이 있다. 인간의 표정을 한 그 연약해 보이는 배우가 왜 대배우가 됐는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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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2007

양조위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예전 <씨클로>를 함께 봤던 선배가 떠올랐다. 그는 그 이후 정치부 기자를 거쳐 뉴스 앵커로 맹활약 중인데, "갑자기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는 익살스러운 장난 메일을 내게 보낼 정도로 지금도 여전한 영화광이다. 아마 요즘도 생방송을 앞두고 극장을 찾다가 부장에게 혼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양조위를 만났다고 하면 그는 분명 격세지감이 들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도 양조위와 마찬가지로 얼마전 불혹의 나이가 됐다. 곧 그에게 메일을 보내려 한다. “선배, 내가 <씨클로>의 양조위를 만났는데, 그 때 부장에게 깨진 건 정말 약과였네요. 그쵸?”
TAG 무간도, 색 계, 시클로, 양조위, 유덕화, 중경삼림,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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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해서 흥행한들 대수인가?

박스오피스 헤집기 2007/11/13 11:00

한국사회만큼 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곳도 드물 것이다. 몇 년 전 극장에서 개봉한 봉만대 감독의 에로틱 멜로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영화, 흥행에서 처참하게 깨졌다. 그러나 인터넷 상영에서만큼은 대박이었다. 1년이 넘도록 부동의 1위였다.

극장에선 안되고, 인터넷 상영에선 되는 이런 기현상의 배후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비록 어둠이라는 보호장치가 있긴 하지만 극장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보고 있다는 게 민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어떤가. 문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야함'이란 이렇게 여전히 밀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은밀한' 무엇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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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며 선전한 것을 두고, 이 영화가 야한 영화로 포장됐기 때문에 손님을 끌었다고 하는 것은, 그러므로 지나치게 순진한 분석이자, 그 분석 자체가 성을 바라보는 이중성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눈빛 반짝이며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에헴'하고 싶어하는 누군가의 갈피 모를 황망함에 언어적인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셈이다. "야한 게 다가 아니야"라고 애써 강조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야한 것을 기대하고 영화를 고른 건 천박한 것"이라는 뒤틀린 우월 의식을 드러내는 일이다.

<색, 계>는 야해서 손님을 끈 것이 아니라, '야하기까지 한 영화'였기 때문에 손님을 조금 더 끈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안은 이미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 등으로 국내에 광범위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신작에 양조위가 캐스팅된데다, 여배우 탕웨이와의 짜릿하고 감성적인 러브신이 포함됐다면, 그건 야하고 말고를 떠나 영화적으로 매우 강력한 흡입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또, 야해서 흥행하면 좀 어떤가. 양조위의 은밀한 곳을 보고 싶은 욕망은 단죄할 수 있는 것인가?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을 보고 싶은 마음은 천박하고 음흉한 것인가? 그 아름답고도 긴장감 넘치는 섹스신을 더 많은 관객들이 보고자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좀더 융통성 있는 열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냔 말이다.

관음의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다. 누구라도 아름다운 섹스 장면을 보고 싶어한다. 적지 않은 러브호텔의 벽과 천장에 거울이 달린 것도 스스로를 관음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 하는 욕망을 수렴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감정은 거세하고 오로지 동물적 교미의 순간에만 집중하는 포르노그래피적 욕망과는 차별된다. 사회적 맥락과 개인사적인 배경 안에서 그려지는, 또한 사랑이라는 달뜬 감정의 탄생을 내포하는 탐미적 섹스 신은 그 자체로 예술일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러브호텔의 거울 역할을 자처한 이안은 관객이 가진 관음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가운데, 가장 감칠맛 나고, 가장 짜릿한 러브 스토리를 선사한다.

관객들 각자가 지닌 욕망에 상응하는 만족을 얻었다면, 그걸로 <색, 계>는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누군가는 '왕 치아즈'를 파멸로 이끈 '이'의 치명적인 매혹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 하며 극장문을 나섰을테고 또 누군가는 그날밤 함께 영화를 본 연인과 영화 속의 멋진 체위를 흉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좀 어떤가.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2007.11.09~11)

순위     작품명      스크린수(서울/전국)  서울주말       전국누계
===============================================================
1위       식객              75/376                151,000      1,341,000
2위      색, 계             69/233                  97,000        274,000
3위    바르게 살자       55/268                 56,000      2,023,000
4위   로스트 라이언즈  40/158                 32,800        108,200
5위    더 버터플라이    42/207                  29,300        128,500


*이 박스오피스의 스코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과 관련이 없으며 각 영화가 동원한 실제 관객수의 근사치임을 밝힙니다. cinemAgora

TAG 박스오피스, 색 계, 양조위, 이안, 탕 웨이, 흥행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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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이 보지 못한 모스크바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11/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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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개봉한 영화 <본 얼티메이텀>은 모스크바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고독한 영웅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러시아 경찰들에게 긴박하게 쫓기는 장면이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있고, 분위기는 삼엄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모스크바라는 공간은 주인공을 둘러싼 긴장과 위압감의 미장센으로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영화가 의도했다기 보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영화가 세뇌했던 크렘린의 고압적이면서도 은밀한 이미지의 잔영이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어떤 공간이나 대상에 대해 반복적으로 투사하는 이미지는 확실히 위력이 있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웃지 못할 일화. 모스크바에 출장 간 한 한국 기업체 직원이 경찰의 검문에 지나치게 '쫀' 나머지, 냅다 튀다가 루블화 몇 장을 등 뒤로 던졌다고 한다. '먹고 떨어져'라는 의사 표현이었을 터, 그는 그 덕분에 경찰이 아닌 특공대원들에게 붙잡혀 더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 딱한 사람, 아무래도 냉전기의 <007> 시리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또 하나의 일화. 미국에 간 한국인이 호텔 엘리베이터를 흑인 배우와 단 둘이 타게 됐는데, 흑인을 갱으로 오인한 그가 '4층 버튼을 눌러 주세요(Hit Four, Please)'라는 흑인의 말에 자기 머리를 스스로 네 번 벽에 박았다고 한다. 그는 갱스터 영화를 너무 많이 봤을 게 뻔하다. 그냥 피식 웃고 넘길 수 있는 사례들이지만 곱씹어 보면 영상 매체가 얼마나 지독한 편견의 메신저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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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선배 부부의 초청을 받아 모스크바에 다녀왔다. 겨울의 이미지로만 각인된 모스크바는 따스한 햇볕을 받아 찬란했다. 붉은 광장의 탁 트인 전경 위로 우뚝 서 있는 바실리 성당은 그 자체로 황홀한 예술품이었고, 거리 곳곳에 옛 소련의 잔재와 제정 러시아의 유물들이 그로테스크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였다.

더욱 찬란했던 것은 '좋은' 계절을 맞아 일광욕을 위해 웃통을 벗어 제친 시민들, 결혼식을 올린 뒤 사진 촬영을 위해 거리와 공원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선남선녀들의 풍경이었다. 잘 차려 입은 신랑 신부들의 표정은 눈부셨고, 햇볕을 흠모하는 시민들의 여유 넘치는 모습은 러시아를 눈과 얼음의 나라로만 '단순무식'하게 새겨 왔던 내 인식의 한 언저리를 싹둑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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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에서든 나는 영화를 통해 기대하는 바와 같은 것을 기대한다. 사람의 풍경을 목격한다는 것은, 나로선 그 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파편화된, 혹은 왜곡된 이미지를 조율하는 작업이자 삶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건물보다, 거리보다, 늘 사람을 더 눈 여겨 보게 된다.

한 차원 높은 것은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바디 랭귀지가 됐든, 어설픈 현지어가 됐든, 적어도 비영어권 나라에서 자기 편하자고 아무에게나 영어를 들이대는 몰상식한 짓만 안 한다면, 모든 종류의 소통은 여행의 질을 최고의 단계로 끌어 올리는 지름길이다. 다행히 현지에 사는 지인의 도움으로 의사 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던 나는, 러시아인들의 무뚝뚝함에 처음에는 짜증이 나다가, 여행이 끝날 즈음엔 슬쩍 그들이 가진 의리의 정서와 살가움을 느낄 수 있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그리하여 내 머리 속에서 러시아는 비로소 눈과 이미지의 감옥에서 출소할 수 있었다. 밤 10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는 한 여름 밤의 보드카 맛이 기가 막히다는 사실은 덤으로 얻어 왔다. 본도 그 맛을 알았을까?

여행주간지 '트래비' 최근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TAG 러시아, 모스크바, 본 얼티메이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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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피아프의 부활 <라비앙 로즈>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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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엔 음악 영화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미 1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원스>를 비롯해 베토벤의 말년을 다룬 <카핑 베토벤>도 꽤 괜찮은 흥행세를 기록했다. 곧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도 영화를 통해 부활한다. 이달 하순에 또 한 편의 음악 영화가 가세한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그 주인공이다.

전설로 남은 가수들을 다룬 음악 영화라면, 그들의 존재감과 시대성을 뛰어 넘는 음악의 힘만으로도 한 수 먹고 들어간다. 레이 찰스를 다룬 <레이>가 그랬고, 이 영화 <라비앙 로즈>가 그렇다. 위대한 가수의 지난한 인생 역정을 담아내는 전기 영화의 틀에,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음악이 눈과 귀를 한꺼번에 감동시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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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들은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너무 산만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만 한 구성이다. 그 방식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한 예술가의 파편적 순간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하나의 맥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