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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07/12/07 <싸움> 쌈박질 연애시대 (6)
  2. 2007/11/28 미녀는 괴로워? 뚱녀는 즐거워!
  3. 2007/11/23 '올바름'이라는 낡은 가치
  4. 2007/11/19 <베오울프>를 보고 부시를 떠올리다
  5. 2007/11/13 에디트 피아프의 부활 <라비앙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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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10/27 어머니가 위대한 이유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8. 2007/10/26 戒를 넘는 色 <색, 계>
  9. 2007/10/25 <경계> 우리는 왜 선을 긋고 말뚝을 박을까
  10. 2007/10/18 시장기 돋우는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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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07/10/09 [PIFF2007] 부산에서 미리 본 <M>
  13. 2007/10/07 [PIFF2007] 너무 쉬워서 난해한 <빨간 풍선>
  14. 2007/10/06 [PIFF2007] 운좋게 만난 걸작 <4개월 3주...그리고 2일>
  15. 2007/10/05 [PIFF2007] 개막작 <집결호> 리뷰
  16. 2007/10/04 수작의 문턱에서 멈춘 <궁녀> (1)
  17. 2007/09/18 잔인할지언정, 사랑은 <행복>이다 (2)
  18. 2007/09/14 클래식 문외한, <카핑 베토벤> 보며 졸도할 뻔 (2)
  19. 2007/09/08 동시상영관의 추억을 알아? <데쓰 프루프>
  20. 2007/09/04 궁극의 첩보 스릴러 <본 얼티메이텀>

<싸움> 쌈박질 연애시대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2/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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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싸움이야 칼로 물배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혼 커플은 칼로 물만 배지 않는다. 진짜 서로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더 이상 부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피트와 졸리처럼, 그들 역시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 상민(설경구)과 공예 미술가 진아(김태희)는 방금 이혼했다. 요즘 젊디 젊은 돌싱(돌아온 싱글)들이 넘쳐 나는 세상이니 나름 현실성 있는 설정이다.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 상민은 결벽증이 심하고, 진아는 자존심이 무한수열이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그 정도 성격 차이 하나 극복 못하고 틈만 나면 티격태격이다. 헤어지고서도 싸울 건더기를 찾아내고 싸우고 또 싸운다. 급기야 목숨을 담보로 한 자동차 추격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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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짐작하신대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다. 홍보 마케터는 그 앞에 '하드보일드'라는 말을 추가했지만, 나는 그 말 대신 '오버 액션'이라는 말을 쓰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오버 액션 로맨틱 코미디. 나쁜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니다. 영화의 장르적 쾌감을 끌어 올리기 위해 배우들의 연기와 설정 모두 오버 액션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게 큰 오점은 아니니까. 처음엔 살짝 적응이 안되더라도, 영화를 30분 정도 보고 있으면, 관객에 따라선 악쓰고 때리고 쫓고 도망치는, 사도 마조히즘적 이혼 부부의 사활을 건 결투를 나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TV 드라마 <연애 시대>로 주가를 올린 바 있는 한지승 감독은 이혼 커플의  티격태격 로맨스를 영화라는 매체적 특성에 걸맞게 조금 더 극단적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보인다. 설정 자체의 독창성엔, 그러므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겠다. 게다가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별과 다툼, 그리고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의 비약이 일반적인 허용치 이상이다(물론 등장인물들이 아직 어른이 안된 애들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럴거면 차라리 액션 누아르를 넘어 SF로 가버리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 설정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비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것이 끝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니 영화는 관객의 넓은 아량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여보시게들, 이건 영화야. 게다가 김태희의 저 사랑스러운 악쓰기가 키포인트라고! 김태희의 저런 표정, CF에서도 못본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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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나를 이해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내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는 고결하며 착하디 착한 메시지에 도달하기 위해 그 난리 부르스 액션 누아르를 통과해야 한다는 건 결과적으로 김 새는 일이다. 그 똑똑한 친구들이 왜 그 무식한 짓거리를 한 뒤에야 그 지당한 이치를 깨닫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설경구와 김태희가 치고 박고 싸우는 볼거리(그렇다. 이건 볼거리다. 한지승 감독도 둘의 싸움을 은근한 관음증적 시선으로 바라볼 관객을 위해 팬서비스를 잊지 않았다)를 위해 비약이나 과장 쯤은 용서할 수밖에. 어차피 오버 액션 코미디다. 좀 있으면 세상이 오버 액션하는 크리스마스 아닌가.
<싸움>은 상민과 진아가 벌여온 수 많은 다툼과 화해의 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어느 넓은 쇼핑몰 광장에서 '그러게 왜 헤어지자고 한거야!' "내가 언제 그랬어!' 악을 쓰던 둘은 결국 눈물의 포옹을 한다. 그러자 길 가던 사람들이 둘을 둘러싼다. 박수가 쏟아지고 누군가는 그들을 디카로 찍는다(왜 찍을까? 당신도 길거리에서 싸우다 화해하는 커플 보면 디카로 찍으시나?).

예컨대 이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미국 로맨틱 코미디에서 흔히 써먹는(그것도 예전에 쓰고 요즘엔 거의 폐기처분한)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감독은 두 사람의 캐릭터 묘사를 위해 배경을 대충 처리해 버리는데, 오히려 이 지점에서 배경의 반전을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두 사람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재치 어린 관점을 관객에게 슬쩍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나이대가 다른 두 쌍의 행인이 쓰윽 지나가면서 이런 말을 던지게 했을 것이다. 중년 커플, "꼴값떨고 있네, 요즘 것들은 연애도 참 지랄나게 해." 젊은 여성 두명, "어머, 쟤들 지대로 재수다~" 그리고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 이제부터 우리는 앞선 두 행인의 냉소적 관점을 슬쩍 차용한 상태에서 '꼴값 떠는 지대로 재수 커플의 지랄 액션 어드벤처'를 '쟤들 왜 저럴까?'라는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TAG 김태희, 설경구, 싸움, 한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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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갑생 2008/09/09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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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박갑생 2008/09/19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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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박갑생 2008/10/09 0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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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박갑생 2008/10/09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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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박갑생 2008/10/20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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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뚱녀는 즐거워!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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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헤어 스프레이>를 언론시사회에서 봤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네 번 감탄했다. 첫번째, 뚱녀 역할로 나온 니키 브론스키.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등교길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장면부터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노래 잘한다. 두번째, 내년이면 쉰살이 되는 미셸 파이퍼. 인종 차별주의를 상징하는 악역을 자처해 자신의 매혹을 혐오로 탈바꿈시키는 탁월한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세번째, 존 트라볼타. 30년 전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육감적인 춤 실력을 뽐내며 스타덤에 오른 바 있는 그 춤의 대가께서 친히 주인공의 뚱보 엄마 역할로 출연해 흔쾌히 엉거주춤 스탭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 <헤어 스프레이>. 뮤지컬 특유의 경쾌함 속에서도 자칫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정치적이고도 교훈적인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들이대는 배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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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정도라면, <헤어 스프레이>에 대한 상찬을 위해 더 긴 미사여구를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승전결적 논리 전개나 구구절절 설명에 강박을 가지고 계신 독자들을 위해 몇마디 더 보태자면, 이 앙증맞게 귀여운 뮤지컬 영화는 재미있다. 무엇보다 뮤지컬 본연의 미덕을 잊지 않으므로 눈과 귀가 즐겁다. 그리고 (요즘 영화평에다 이런 말 쓰면 마치 시류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기 일쑤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미녀는 괴로워>처럼 굳이 '성형'이라는 우회 작전이 아니더라도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똥침을 이처럼 통렬하게 작렬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할리우드의 축적된 장르 내공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 증명을 수행하기 위해 <헤어 스프레이>는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이자 시대 배경인 1962년의 아이콘과도 같은 헤어 스프레이는 영화 속에서 외모 지상주의와 위선적 인종 차별주의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헤어 스프레이, 즉 '가오 잡기 위해 일부러 부드러운 머릿결을 딱딱하게 만드는 가스'의 조장된 신화를 뚫는 힘은 바로 인간의 원초적 미덕인 유연함을 사랑하는 것이다. 유연함이란 결국 '다름'을 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소수자의 포용력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설파한다. 포용과 투쟁의 결과물로써 진정한 화합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뮤지컬 장르 본연의 에너지로 극대화함으로써 자칫 지루한 계몽으로 흐를 수 있는 메시지는 훨씬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된다. 감독이자 안무가 아담 쉥크만은 그걸 잘 알고 있는 게 틀림 없다.

이영자도, 조정린도, 하다 못해 빅 마마도 살을 빼야 하는 말라깽이들의 세상이다. 신나게 들썩이고 한참 웃고 나면 곱씹을만한 묵직함이 가슴에 남는다. 설령 이 판타지와 현실과의 괴리에서 얻어지는 씁쓸함일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해 한번쯤 고민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확보한 최고의 미덕이다.
Tip: <헤어 스프레이>는 알려져 있다시피, 1988년 존 워터스가 감독한 영화를 2002년 뮤지컬로 각색한 것을, 다시 영화화한 것이다. 진정한 원소스 멀티유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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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헤어 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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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이라는 낡은 가치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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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양심'이나 '정의'라는 단어처럼 낡아빠진 어감으로 다가오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성장과 성공 지상주의가 뼛속 깊이 스며든 지금,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장땡이고,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합격만 하면 그만이다. 어르신들은 돈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현실은 돈이 에헴 하는 세상이다. 어떻게 벌었든 돈은 권력이고, 권력은 치부마저 별 게 아닌 것으로 둔갑시킨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게 당연한 곳, 그 살풍경 속에 양심이나 인륜, 도덕이라는 말은 순진한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낡아빠진 영화다. 여기저기서 양심이 밥 먹여주냐고, 정의가 돈 벌어주냐고 부르대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생뚱맞게도 양심과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바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거대하고 추악한 진실 앞에서 한 인물의 양심이 발화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유독성 제초제를 팔아 왔던 'U/노스'라는 거대 다국적 기업은 피해 주민들의 집단 소송을 무마하려 한다. 그리고 로펌의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이 회사의 승리를 위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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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아차리고 갑자기 U/노스의 변호를 중단해 버린 실력 있는 변호사 아서 에든스(톰 윌킨슨)는 그를 설득하러 온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한다. "마이클, 우린 그저 청소부일뿐이야." 그렇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 해결사들에겐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더러운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는 거액의 수임료이지만,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대가는 참혹하기 때문이다.

도박 빚에 골칫덩어리 동생의 빚까지 떠안게 돼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른 뒷처리 전문 변호사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유혹과 위협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아서의 입을 틀어 막으러 갔다가 진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직감하는 친구다. 당장 돈이 급하지만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줄 분별할 수 있는 '시비지심'을 지녔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양심의 작동이 그를 올바르지만 위험한 선택으로 이끈다.

유치무쌍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할리우드에서도, 나는 이런 영화를 만날 때마다 그 저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기치 나부끼는 가운데서도,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낡아 빠진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지는 영화들 말이다. <시리아나> <굿 나잇 앤 굿 럭> <블러드 다이아몬드> <굿 셰퍼드> 등 개인의 실존에서부터 사회와 국가, 세계로 시야를 넓히며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영화 매체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게도 '저들은 노는 물이 다르군'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스스로 연출한 <굿 나잇 앤 굿 럭>과 석유 자본과 결탁한 정권의 부도덕성을 파헤친 <시리아나> 등 유독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에 참여해 온 조지 클루니의 '명석한 선택과 연기'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본 얼티메이텀>의 '기가 막힌' 각본을 쓴 바 있는 감독 토니 길로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자신의 첫연출작에서 유감 없이 발휘한다. 완벽에 가까운 스릴러적 이야기 안에 녹록지 않은 메시지를 녹여 낸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치밀한 장르적 짜임새 안에서 시너지를 얻는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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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길로이 감독(왼쪽)과 조지 클루니


이 혀를 내두를만한 걸작에는 예의 혀를 내두를만한 대가들이 배우로, 프로듀서로 동참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시드니 폴락(아래 사진)이 로펌의 사장으로 등장하며, <오션스 13>의 스티븐 소더버그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안소니 밍겔라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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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마이클 클레이튼, 시드니 폴락, 안소니 밍겔라, 조지 클루니, 토니 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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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를 보고 부시를 떠올리다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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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민감 체질의 독자들에겐 스포일러가 될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의 영화 마케팅은 확실히 문제가 많다. 뻥튀기야 광고의 속성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필수 정보를 숨기는 경우라면, 그건 부도덕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믿는다. 하물며 영화다. 영화를 팔면서 관객들을 속이는 것은 양심 문제다. 돈이 좋다지만 그렇게까지 장사하면 욕 먹는다. 게다가 그건 관객 이전에 영화를 모욕하는 짓이다.

<베오울프>의 광고나 포스터에는 이 작품이 3D 퍼포먼스 캡처 영화라는 표시가 없다. 다른 정보를 통해서도 이 작품이 CG가 많이 포함된 실사 영화로 오인될 여지는 적지 않았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홍보면에선 오히려 불리한 정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실사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선택한 많은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당혹감이나 장르적 위화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실제로 이 영화의 네티즌 리뷰는 실사로 알고 봤다가 애니메이션이라서 실망했다는 불만들 투성이다. 그래서 평점도 바닥권이다(그러므로 요즘 인터넷 평점은 거의 마케팅 방법론에 대한 평점이나 다름 없다). 이래서야 영화의 진면목이 제대로 공유될 수 없다. 편견과 배신감이 영화를 압도하는 현상의 대부분은, 마케터들이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영화 마케터들이여, 제발 푼돈 벌자고 영화를 모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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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천박한 유통 논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에 정당한 가치 부여를 하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베오울프>는 놀라운 영화다. 퍼포먼스 캡처 기술의 진일보에 대해선 이미 익스트림 무비가 자세히 논한 바 있으니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나는, 비단 표현력의 진화만이 이 영화에 쏟아부을 수 있는 상찬의 근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세 게르만 서사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어울프>의 이야기는 미묘하게 은유적이다. 노골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부시 정권을 처연한 시선으로 조롱하는 영화다(라는 논지를 나는 지금부터 펼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혀 끌끌 차실 분들은 지금 읽기를 중단하고 나가시기를 권한다. 판타지든 역사물이든 영화는 결국 동시대성의 반영이라는 데 동의하신다면 계속 읽어도 좋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영웅 베오울프의 형상은 부시스럽다. 그는 허풍장이며, 힘의 논리에 경도된 자다. 황금 나팔의 화려함에 현혹되고, 마초 중에 마초이면서도 안고 싶은 여자 앞에선 한 없이 연약해지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3마리의 바다 괴물과 싸운 일화를 늘어 놓으며 9마리라고 떠벌리며, 자신의 일화를 전설로 만드는 것이 권력의 작동 원리라는 것을 영악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다. 프로파간다의 효용을 간파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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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보다 더 흉측한 괴물 그렌텔을 무찌른 뒤, 그는 그렌텔의 어머니까지 물리치러 갔다가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에 홀려 간음한다.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드래곤으로 화해 왕이 된 또 다른 괴물 베오울프의 나라를 불태운다. 드래곤은 외친다. "아버지의 죄, 아버지의 죄!"

나는 이걸 이렇게 해석해 봤다. 폭력으로 세워진 나라 미국은 그 피의 저주를 대물림한다. 미국은 한때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지원했던 후세인을 독재자로 몰아 전쟁을 일으킨 뒤 잡아 죽였다. 아버지 부시가 일으킨 걸프전을 아들 부시가 이라크 전쟁으로 상속 받은 결과다. 드래곤의 반격은 9.11 테러를 상징한다. 죄 없는 시민들이 묵숨을 잃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괴물 왕이 오래전에 지은 죄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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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의 충복이자 그에 이어 왕위를 물려 받은 위그라프 앞에 예의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그렌텔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그리고 '부와 저주의 상징' 황금 나팔로 그를 유혹한다. 황금 나팔은 위그라프의 손에 쥐어져 있다. 혹자는 속편을 예고하는 뻔한 결말이라고 했으나 영화가 위그라프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은 채 끝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일뿐더러 탁월하게 시사적이다. 굴복할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 진화된 기술력으로 재현한 영웅 신화를 통해 할리우드가 자신들의 조국에게 은근히 묻는다. 폭력의 악순환과 저주의 상속을 끝낼 것인가 이어갈 것인가. 모두가 아는 프로파간다의 허상을 계속 우길 것인가 말 것인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원적 저주를 다음 세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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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게르만 서사시, 베오울프, 부시, 퍼포먼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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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피아프의 부활 <라비앙 로즈>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1/1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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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엔 음악 영화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미 1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원스>를 비롯해 베토벤의 말년을 다룬 <카핑 베토벤>도 꽤 괜찮은 흥행세를 기록했다. 곧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도 영화를 통해 부활한다. 이달 하순에 또 한 편의 음악 영화가 가세한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그 주인공이다.

전설로 남은 가수들을 다룬 음악 영화라면, 그들의 존재감과 시대성을 뛰어 넘는 음악의 힘만으로도 한 수 먹고 들어간다. 레이 찰스를 다룬 <레이>가 그랬고, 이 영화 <라비앙 로즈>가 그렇다. 위대한 가수의 지난한 인생 역정을 담아내는 전기 영화의 틀에,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음악이 눈과 귀를 한꺼번에 감동시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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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들은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너무 산만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만 한 구성이다. 그 방식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한 예술가의 파편적 순간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하나의 맥락이 가슴으로 확인된다. 그것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삶의 보편성이다.

감독은, 매춘굴과 서커스단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고 프랑스 최고의 여가수로 등극하기 까지의 그녀를  단순히 인간 승리나 위대함이라는 칭송적 수사에 가두지 않는다. 우린 그저 열정과 회한으로 점철된 한 인간의 특별하되 특별하지 않았던 삶을 목격할 뿐이다. 예술이란 그렇게 우리 삶의 통찰적 은유가 아니던가.

어쩌면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라는 곡을 듣기 위해, 그 산만한 구성의 숲을 헤매며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달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이 곡을 듣는 순간에 이르면,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젊은 시절부터 말년까지를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마리온 코틸라르의 연기는 대단하다. 이런 배우들이 프랑스 영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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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라비앙로즈, 에디트 피아프, 음악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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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든 스릴러의 전율 <세븐 데이즈>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9 19:25
충무로에는 소문이라는 게 돈다. 촬영 과정에서 감독이 스탭들에게 린치를 당했다더라, 모 감독과 여배우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내가 연예 기자도 아닌 이상, 귀담아 들어봤자 큰 쓸모 없는 소문이고, 또 땐 굴뚝에서 연기 안날 경우도 적지 않아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소문들이다. 그러나 거의 들어 맞는 소문들도 있다. 어떤 영화 지금 편집 중인데 촬영 본이 워낙 엉망이라 감독이 편집실에서 쫓겨났다더라, 이런 소문 나는 영화, 십중 팔구 개판 오분전인 퀄리티일 경우 많다. 그 영화 끝내준다더라, 라는 소문도 비교적 신빙성이 있다. 이런 소문 난 영화 치곤 별로였던 경험이 별로 없다.

오늘 언론 시사회를 통해 본 <세븐 데이즈>도 소문이 썩 괜찮았다. 모처럼 괜찮은 장르 영화 한 편이 나올거라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이 영화에서 형사로 등장하는 배우 박희순은 무대 인사에서 "구차한 포장은 하지 않겠습니다. 일단 보십시오."라고 했고, 원신연 감독은 시사에 온 극장주들을 의식해 "스크린 독과점 안될 정도로만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디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는 좋은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과연 자신감 가질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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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긴 설명 하지 않겠다(영화 줄거리는 다른데서 보시라). 스릴러 영화를 소개하면서 긴 설명하는 것은 잘난 척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못된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냥 몇마디 보태면 이렇다.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며 경악했거나,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을 보면서 우리도 저런 '죽이는' 이야기 하나 못만드나 싶었던 분, <24>나 <프리즌 브레이크> <C.S.I> 등 미드 스릴러의 치밀하고 정교함에 푹 빠져 보신 분, <세븐 데이즈>를 보시라. 후회 없을 것이다(무슨 약장사 멘트 같긴 하지만, 영화사에서 시사회 표 말고는 받은 것 없으니 안심들 하시라).

지난해 기가 막힌 폭력 영화 <구타 유발자들>로 세간의 좁은, 그러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원신연 감독은 어떻게 이런 종류의 장르 영화를 요리해야 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정신 없이 빠르게 장면을 편집하고, 또 정신 없이 요란하게 카메라를 흔들어 대면서도, 중심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관객을 이야기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가는 솜씨는 그가 이미 장르에 통달해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시나리오의 높은 완성도는, 입에 침이 마를 칭찬이 아깝지 않다. 모처럼 잘 만든 스릴러의 전율을 만나니 반갑고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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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데이즈>는 배우 박희순의 매력을 재발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남극일기>나 <귀여워> 등으로 잠재력을 드러냈지만, 막무가내형 비리 경찰이지만 정도 많고 의협심까지 갖춘, 다소 전형적일 뻔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온전히 그의 연기자적 내공이다. 더불어 건달 보스로 등장한 우리의 오광록도 진가를 발휘한다. 그의 입에서 나와야 제대로인 명대사는 이번에도 예외가 없다. "신문지가 날 때리네~"


TAG 세븐데이즈, 원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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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위대한 이유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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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위대하다. 많이 듣는 소리다. 그만큼 모성에 대한 칭송은 고금을 막론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비록 최근에는 가부장의 위기 상황에 대해 다분히 반대급부적인 부성애 찬양 영화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영화만 해도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 <말아톤> <엄마> <맨발의 기봉이> <허브>, 최근에는 하명중 감독의 직설적인 모성 찬양극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코미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까지, 어머니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영화의 전통은 트렌드의 향방과 상관 없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만큼 시대와 환경을 막론한 보편적 감동의 원천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모성을 소재로 채택한 많은 영화들이 모성애의 강조를 위해 드라마틱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자주 봐 왔다. 가족 휴먼 드라마라는 장르적 범주가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현실에서 모성의 풍경은, 적어도 제 3자가 보기엔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거나, 때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지부진한 생계 전선에 나가거나, 대개 어머니의 처지는 어머니이기에 특수해 보이지 않는다. 요즘엔 자식들을 위해 입시 전문가를 자처하거나 대학 수강신청까지 대신 해주는 열성 어머니들이 있다고는 해도, 그것조차 모성의 소산이므로 유난스러워 보일지언정 보편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일생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순간이나 불의의 사고로 자식과 사별하는 순간 말고 어떤 극적인 드라마가 있을 수 있을까.

왜 없겠는가. 어머니의 눈에 자식이란 태어남부터 자라나는 모든 과정이 드라마다. 그 자식이 첫 걸음을 떼고, 처음으로 말 다운 말을 하는 순간,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고, 대학 졸업장을 받아오고, 취업을 하게 되고...순간 순간이 새록새록 드라마다. 차원이야 다르겠지만 자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군대 훈련소에 면회 온 어머니를 뒤로 한채 다시 병영으로 행진해 돌아갈 때, 꾸역 꾸역 '멋진 사나이'를 부르며 삼켰던 눈물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그 순간을 능가하는 드라마틱한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영화화한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전형적인, 그래서 드라마적이지 않은 듯 보이는 한 어머니의 인생에서 드라마를 뽑아낸다. 언뜻 가장 드라마틱해 보이는 아버지와의 불화와 이별을 그냥 저냥 툭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커나가는 아들을 홀로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의 고단하면서도 낙천적인 생을, 그리고 그 마지막을 아주 긴 러닝타임 내내 담담하게 묘사하는 데 그친다(오히려 아들의 방탕한 대학 시절과 지지리 궁상의 가난한 시절이 더 많이 나오는데, 그런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어머니는 마치 후경처럼 단단한 존재감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와 자식은 필연적으로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가 끝내 이별할 수밖에 없도록 맺어진 관계다. 그러므로 둘은 서로에게 드라마다. 이 영화 속의 어머니와 아들도 그렇다. 진학을 위해 탄광촌의 집을 떠나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특별하지 않은 풍경에서  꽤 큰 감동이 밀려 오는 데 대해 나는 놀랐다. 정성스레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힘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쓰인,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편지 글을 읽으며 주인공이 울먹일 때, 장식이 달리지 않은 이 정직하게 보편적인 풍경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상 어머니와 아들간의 교감을 어떻게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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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모든 관객들이 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잠재된 아련함과 경외감을 신뢰한다. 신뢰하므로, 이렇다할 영화적 설정이나 장치 없이, 이를테면 주인공 아들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의 슬로 모션만으로도 기꺼이 눈물을 훔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릴리 프랭키 소설 속의 어머니는 말년에 아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이웃 주민들에게 애써 밥을 해 먹이는, 넉넉하고 호탕한 분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어머니는, 메마르고 황폐한 듯 보이는 도쿄라는 도시적 공간을 인정이 흐르고 살갑게 챙겨주는 '고향'으로 만든다. 그게 이 작품이 설파하는 진정한 어머니의 위대함이 아닐까. 자기 아들에 대한 헌신에만 그치지 않고, 모두에게 어머니일 수 있는 어머니성의 진면 말이다. 후반부의 암투병과 모자의 사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 나머지 영화가 이 부분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일본의 고두심, 또는 김혜자라고 불러야 하나? 영화 속 노년의 어머니를 연기한 키키 키린의 연기는 대단하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연기한 우치다 야야코는 그녀의 친딸이라는데, 실제로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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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오다기리 죠,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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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를 넘는 色 <색, 계>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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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다. 영화 <색, 계>를 시사회를 통해 봤다고 했더니 질문들이 한 곳으로 쏠린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대부분 여성들의 것이다. "양조위가 진짜 벗어요?" "배우들이 진짜로 한다면서요?" "어디까지 나와요?"

야한 영화, 남자들만 밝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에로틱 신'에 대해서만큼 여성들의 관심도 간단치 않은 것 같다. 하물며 주인공이 누구인가. 한없이 슬픈 눈의, 안아주고 싶은 남자 양조위 아니던가. 그래서 그 질문들을 간단히 압축하면 양조위가 어느 정도 수위의 노출 연기를 선사하느냐, 렸다. 답은 간단하다. 다 벗고 보여줄 것 다 보여주며, 할 것 못할 것 다한다. 소문대로 양조위는 여배우 탕웨이와 정사 장면에서 실연을 펼친다, 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적지 않은 분들이 제일 궁금해 하실 부분에 대한 답을 제시했으니, 이제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를 탐문할 차례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제목 그대로다. 1940년대 상하이를 꿀꺽한 일본 괴뢰 정부의 개를 자임한 첩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한 애국적 스파이 여성이 노린다. 운 나쁘게도 동료들 중 가장 예쁘게 생긴 왕 치아즈(탕웨이)는 사업가의 매력적인 부인을 가장해 매국노에게 접근한다. 그를 유혹해 암살하려는 계획.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얄궂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홀딱 빠져 버린다. 이 홀딱 빠지는 계기를, 영화는 제목 그대로 '색' 즉, 섹스에서 찾는다. 두 사람은 잠재적인 적이지만, 침대에서만큼은 변강쇠와 옹녀다. 육정(肉情)이 무섭다고 하던가. 육정이 드니 이성이 무뎌진다.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바야흐로 색(色)은, 계(戒)를 방해한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편안한 쪽에 섰고, 한 사람은 조금 더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쪽에 서 있다. 그런데 '색' 앞에서 두 사람의 선택은 무의미하다. 치사한 생존이냐, 대의를 위한 희생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중요한 건 '막 부인' 왕 치아즈가 "뱀처럼 몸안으로 들어오는" 이의 치명적인 매혹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며, 의심 많은 이도 막 부인의 눈빛에서 다른 의도를 발견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30분간의 정사 장면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감각의 제국: 상하이 편>이나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탱고>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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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작가 애니 프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브로크백 마운틴>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중국 출신의 여류 작가 장 아이링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서로 다른 소설에서 빌어오긴 했으되, 이안은, 자연이든 시대든 인간을 짓누르는 환경 안에서 사랑이라는 감성에 쉽게 포획되는 인물들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하다는 것을 이번에도 입증해 보인다. 어느 싸늘한 밤에 충동적으로 서로를 탐한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카우보이는, <색, 계>의 리와 왕 치아즈와 다르지 않다.

대관절 이 치명적이고도 신비로운 화학작용을 어떤 신념과 이성의 수사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나 이데올로기, 제도와 윤리가 단죄할 수 없는 유일한 지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남녀간에 생기는 불꽃일 것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사랑은 고통을 동반한다. 사랑은 보편적이되 누구도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므로 고통스럽다. 내가 아는 한, 이안은 그 모순적인 풍경을 가장 멋지게 묘파하는 작가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모델 출신의 배우 탕웨이에게 홀딱 빠지고 말았다. 세우지 않은 코, 입술 위로 살짝 올라온 인중의 언덕, 깎지 않은 겨드랑이의 털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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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색 계, 양조위, 이안, 탕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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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우리는 왜 선을 긋고 말뚝을 박을까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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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하는 영화 감독이다. 줌인이나 줌아웃, 클로즈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 완고한 예술가는 카메라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거나 불가피할 경우에만 아주 느릿느릿 패닝을 할 뿐이다. 그것도 주로 등장 인물이 프레임 바깥으로 걸어 나간 뒤에야 졸다 깬 사람처럼 뒤따라 간다. 나처럼 성질 급한 관객은 그 호흡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경계>를 보면서도 속으로 몇 번 외쳤다. '빨리 돌리란 말야, 이 게으름뱅이!'

그러므로 장률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기존 영화보기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함을 뜻한다. 인물의 상황과 배경을 시각화해 제시하는 그의 방법론이 '응시와 관조' 또는 그를 통한 '사유의 투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의 영화는 대개의 관객들에게 고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른바 주류적이지 않은 예술을, 피카소나 잭슨 폴락의 그림을 응시하는 듯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면, 둑이 터진 듯 치고 들어오는 감정의 파고가 시야를 통해 가슴 속으로 급습해 들어오는 전율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작심이라도 한 듯, 부동의 지점을 급히 떠난 듯, 손에 들린 카메라가 절망과 격정, 혹은 관조와 해방의 경지에 이른 인물의 뒤를 바짝 뒤쫓는 바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눈시울에 깜짝 놀랐다. <망종>에서도 그랬고, 이번 영화 <경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단순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조장된 감동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 막막함, 그리고 처연함 등 온갖 복잡한 감정이 융화돼 마그마처럼 치솟아 올라오는 그런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망종>에 이어 이번에도 최순희 이야기다(그래서인지 이번에 순희를 연기한 배우 서정은 ,망종>의 순희(류연희)와 놀랄만큼 흡사한 캐릭터를 재연하고 있다). <망종>에는 김치 팔던 조선족 여인이었던 그녀가 이번 영화 <경계>에서는 어린 아들 창호(<망종>의 창호는 기찻길에서 놀다가 죽는다)의 손을 잡고 막막한 몽골 초원의 외딴 집으로 흘러 든 탈북 여성이 됐다. 두만강이라는 경계를 넘어 경계 없는 초원에 왔지만, 이곳에도 경계는 존재한다. 갈 곳 없는 순희와 거처를 공유하는 몽골 남자 헝가이는 어린 딸과 아내를 도시에 보낸 채 사막과 초원의 경계에서 투쟁 중이다. 두 사람간의 언어의 장벽은 경계가 되지만, 어린 창호는 그 경계를 훌쩍 넘는다. 초원을 살리려는 헝가이의 노력에 두 사람은 노동으로 화답하고, 그 또한 경계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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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으로 떠남을 재촉하는 엄마와 달리 몽골 아저씨의 거처에 남길 원하는 창호는 초원에서 대화를 나눈다. "창호는 여기가 좋니?" "여긴 사람이 없잖아." "창호는 사람이 싫어?" "사람이 없으면 안전하니까." 사람이 없으면 안전하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늘 경계를 만든다. 사람들 속에 언제나 참기 어려운 경계가 있다. 그러나 홀로 있어야 하는 외로움을 이겨내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북한을 탈출하면서 남편을 잃은 순희는, 헝가이의 취기에 의존한 구애를 뿌리친 대신, 다짜고짜 가슴을 만지는 젊은 군인의 몸은 거부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또 다른 경계가 생긴다.

장률은 묻는 것 같다. 왜 우리는 선을 긋고 말뚝을 박고 살 수밖에 없을까. 경계 짓기가 인간의 숙명일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계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것 말고는 무엇이 있겠냐고. 골치 아픈 문제다. 속 편하게 시대의 무게를 핑계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원시적 삶의 조건을 함의한 초원을 배경으로, 그 화두를 좀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 그러니 더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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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률 감독, 신동호(창호),서정(최순희)

시사 전 무대 인사에서 장률 감독은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몽골 초원에 가 있다"고 했다. <경계>를 찍으면서 그곳에서 찍을 다른 영화들까지 계획을 해 놓았나 보다. 이 경제적일 수밖에 없는 비주류 감독은 시사회에 참석한 스탭들에게 물었다. "시사 끝나고 저와 함께 몽골 초원으로 다시 가실거죠?" 그들중 누군가 짧고도 분명하게 답했다. "아니요!" 영화 <경계>를 찍으면서 그들 사이에도 경계가 생겼나 보다. 그래도 그 풍경은 살갑고 귀여워 보였다. 배우들과 제작진에겐 마음대로 씻고 먹을 수 없는 초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경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계 짓기가 숙명이라지만, 경계는 때론 뛰어 넘으라고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계와 경계 사이에는 늘 어디론가 뻗어 있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TAG 경계, 망종, 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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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기 돋우는 <식객>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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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라는 건 시기, 색깔, 연륜, 기대, 냄새, 인생관 기타 등등의 수많은 함수를 직감적으로 풀어낸 결정체" 성석제 산문집 '소풍' 중에서.

허영만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식객>을 언론 시사회를 통해 봤다. 이 영화, 지상의 온갖 산해진미를 펼쳐놓고 늘어가는 뱃살에 고심하는 관객들을 식욕의 나락 속으로 빠뜨리는, 아주 못된 영화다. <식객>은 웃음보 이전에 침샘을 자극하고, 눈물샘 이전에 위장을 직격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끼니를 직전에 두고 봐야 제 맛이다. 비록 입이 아닌 눈만 호강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식객>이 미식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그쳤다고 말하면 감독과 배우 섭할 것이다. 명색이 영화다.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흐르고 그 안의 대결 구도에서는 좀더 착하고 정직하며 성실한 녀석이 이긴다. 그러니까 대중 영화이며, 착한 영화이다. 게다가 쉬운 영화이다.

허영만 만화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감독 전윤수가 영화적으로 재창조한 인물들은 다분히 만화적이다.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의 대결 구도도 전형적이다. 이하나와 김상호, 정은표 등이 연기한 조연들의 배치도 그 범위 안에 놓여 있다.

음식을 매개로 한 두 요리사의 치열한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식객>은, 여기에서 살짝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친일과 애국이 뒤바뀌어 버린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을 배경으로 깔며 친절한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의 역사적 정의감을 (다소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것이다(그러다보니 러닝타임이 길어졌다. 그래서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다).

진정한 맛이란 위에 인용한 책에서 성석제가 갈파했듯,  단순히 혀끝을 자극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핵심은, 맛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것을 맛보는 사람과의 교감이며, 잔기술이 아닌 정신의 결과물이다. <식객>은 그 진정한 맛의 달인을 오해와 편견의 감옥에 가뒀다가 다시 복권시키는 가운데, 관객들이 그에게 감읍할 수 있도록 인간적이고도 역사적인 정당화를 선사한다. 거창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러므로 이 영화는 갇힌 시대 정신의 부활과 전도된 가치의 복권을 욕망하는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회가 끝나니 당연하게도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8천원 짜리 고급 음식으로 둔갑한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그래서? 영화가 볼만하다는 얘기야? 허영만 원작을 영화화한 <타짜>에 비해, 물론 원작의 내용이 달라서이겠지만, 훨씬 더 친절하고 쉽게 풀어낸 영화다. 그러다보니 극의 긴장감은 <타짜>에 미치지 못하고, 음식 만드는 과정을 비추는 장면 외에 대단히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장면도 많지 않다. 호기롭게 고급 한정식 집에 들어섰다가 특별할인가의 단출한 정식을 먹은 기분이랄까? (내 경우,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TAG 김강우, 식객, 이하나, 임원희, 전윤수,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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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자> 어정쩡한 코미디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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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고, 라희찬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바르게 살자>는, 주연으로 정재영까지 가세했으니 안봐도 장진 사단의 냄새가 물씬 풍길거라 예상할 수 있다. 과연 그런 것도 같다. 흔히 장진 감독의 코미디를 '엇박자 코미디'라고들 부르는데, 관객들을 웃기는 타이밍이 한 템포나 반 템포 늦게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 모순이다. 코미디는 원래 엇박자라야 웃긴다. 예상대로 흐르면 재미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말은 사실 장진식 코미디를 설명할 이렇다할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 저널이 대충 갖다 붙인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나는 또한 해석하고 있다.

대신, 장진 코미디가 갖는 진정한 매력은 전혀 웃기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 웃기는 대사나 행동을 슬쩍 배치하는 재치라고 생각한다. 관객의 의표를 찌르길 좋아하는 장진의 예측불허 테크닉은 좁게는 한마디 대사에서부터, 넓게는 이야기 전체로 확장되기도 한다. 역시 장진 감독이 각본을 쓴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머리에 꽃 꽂았시유."라는 임하룡의 대사 한마디로, 인민군과 '미친년' 강혜정의 첫 조우의 긴장감을 순식간에 누그러뜨리며 폭소를 자아낸다. <아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교도소에서 외출 나와 아들을 처음 대면하는 순간, 차승원의 대사는 감동을 자아내는 상투어를 예상했던 관객들을 슬쩍 배반한다. "아들의 눈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실은 목도리로 얼굴을 가려서 그렇습니다."(대충 이런 대사인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니까 그는, 부조리의 미학으로서의 코미디의 본질을 배운대로 착실히 써먹고 있다는 얘기다. 가끔 관객과의 '메롱 요건 몰랐지' 게임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아들>에서처럼 극단적인 반전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일본 원작 소설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를 토대로 새로 각색 작업을 거친 이 영화 <바르게 살자>도 그런 면에선 장진 코미디의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말은 동시에 그래서 별반 새롭지 않은 영화가 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설정의 참신성은 원작에서 빌어온 것이니 그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할 이유는 없고, 핵심은 코미디로서 이 영화가 얼마나 제대로 관객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조금 더 바란다면, 그래서 잘 만든 코미디의 자격조건인 풍자적 희열까지 선사해주고 있느냐의 문제다. 그러니까 코미디의 기본을 갖췄다는 전제 하에 장진 코미디가 어쩌구 저쩌구 해야 한다는 말이다.

순경 정도만이 원리 원칙대로 산다는 이유로 바보 취급 당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를 바보 취급한 세력들이 된통 당한다는 얘기렸다. 은행 강도 모의 훈련에 들어갔으면 강도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믿는 정도만이 군대용어로 'FM(Field Manual)대로' 하는 바람에 일이 자꾸 꼬여 간다는 거다. 그런데 그는 결코 일탈하지 않는다. 진짜 '바르게' 강도짓을 한다. 선과 악, 바름과 그름, 합법과 불법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해프닝이다.

이건 그 자체로 코미디다. 게다가 장진 감독이 좋아하는 설정이다. 남한에 와 사면초가의 신세가 된 북한 간첩(<간첩 리철진>, 착하고 정의로운 킬러들(<킬러들의 수다>), 시한부 인생이라 착각하는 얼뜨기 야구선수와 예쁜 스토커의 괴상한 순애보(<아는 여자>), 국군과 인민군의 죽일수도 살릴수도 없는 조우(<웰컴 투 동막골>) 등 현실성은 있지만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하나의 환경 안에 버무려 놓고, 그 충돌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웃음 뿐 아니라 페이소스까지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장진은 잘 활용해왔다. 그러므로 이 영화 역시 시츄에이션의 얼개에서 이미 장진적 코미디라 부를 수 있는 자격조건을 한껏 갖췄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해프닝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파열돼 나올법한 웃음을 위한 알리바이, 즉 긴장감의 강도가 고양되지 않고 이야기가 느슨하게 흐른다는 것이다. 코미디의 대전제는 완성됐는데, 소전제들이 딱 예상 영역 안에 놓여 있는 셈이다. 여기서도 장진 사단 특유의 코미디 감각은 군데 군데 엿보이긴 하지만 이제 그것조차 진부하게 보일만큼 이미 익숙한 그 테크닉은 의표를 찔린 자의 흔쾌한 폭소로 이어지지 못한다. 웃음이라는 측면에서, 어퍼컷이나 카운터 블로는 없고 잽만 날리다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칙대로 살면 바보 되는 세상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의 쾌감이 있느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말 그대로 모의 훈련이 끝나면 만사 원점으로 돌아갈 판인데...이 안전이 보장된, 그래서 애들 장난의 어른 버전과도 같은 해프닝의 풍자적 공명은 큰 스크린에 걸맞지 않게 쪼잔하게 띵띵 울리다 마는 느낌이다. 볼일 보고 휴지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뒤 엉거주춤 느슨하게 팬티 다시 걸쳐 입고 그냥 나온 기분이랄까? 그것이었다. 이 어정쩡한 코미디에서 딱히 스트레스를 풀지도 못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을 챙기지도 못한 이유는.

TAG 라희찬, 바르게 살자, 장진, 정재영,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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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2007] 부산에서 미리 본 <M>

휘뚜루마뚜루 영화리뷰 2007/10/0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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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프리뷰다. 그러므로 영화 내용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가급적 피하고, 즉각적인 감상을 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