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대극 <하나>를 흥미롭게 봤다. 슴슴하고 담백한 녹차를 마신 기분이 들었다. 절정으로 치닫는 내러티브 관습을 거부하고, 인물 개개인의 고뇌와 행복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고레에다 특유의 연출 기법이 독특한 미덕을 만들어낸 영화였다. 특히 시대극답지 않게 지배 계층이 아닌 민중들의 삶을 재연하려는 그의 노력은 역시 '고레에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영화의 전면에 나서고 있진 않지만, <하나>는 에도 시대에 일어난 이른바 '아코(赤穗)의 낭인 복수 사건’을 슬쩍 배경으로 깔고 있다. 1702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쇼군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영주의 복수를 위해 사무라이 47명이 거사에 나섰다가 전원 할복형을 당한 사건이다. 영화 말미에 나오듯, 이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충성심의 표본으로 여겨져 이후 '추신구라(忠臣藏)'라는 가부키로도 만들어져 이어 내려오고 있다.
일본사를 잘 아는 지인에게 들으니, 추신구라는 전국 시대의 종결로 더 이상 칼을 쓸 이유가 없어진 무사 계급이 지배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활용됐다고 한다. 영주의 억울한 죽음을 앙갚음하기 위해 1년여간을 절치부심하다가 결국 야습에 성공한 뒤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 무사들은, 주군을 향한 절대적 충성심을 표상하기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사무라이는 단지 칼만 쓰는 중세 조폭들이 아니라, 명확한 윤리적 규범에 의해 행동하는 근대적 지배 계급으로서의 자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 2001년 후지 TV에서 방송된 <추신구라 1/47>을 비롯해 여러 차례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질만큼, 이 역사적 사건이 일본인들에게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00년 제작된 <기묘한 이야기>나 이 작품 <하나>처럼 최근 일본영화에서 추신구라의 의미를 비틀거나 뒤집는 경향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가끔 (약간 삐딱한) 일본 감독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들이 '일본적'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굉장한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일본적'인 카테고리 안에는 집단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역사성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는 '복수' '충성심' 등의 집단 윤리가 개인의 행복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데올로기로 승화되는 복수 판타지의 풍경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다. 그리곤 시선을 돌려 민초들의 구체적 삶에서 건강한 낙관을 목격한다.
그건, '전쟁할 에너지로 차라리 섹스에 탐닉하라'고 말하는 <숏버스>의 존 카메론 미첼도 흔쾌히 동의할 얘기다. 고레에다는 말한다. '복수할 시간 있으면 똥이나 잘 싸라'고.
(사족: 오카다 준이치와 미야자와 리에, 아사노 타다노부, 카가와 데라유키 같은 스타배우들이 이런 소품 시대극에 한꺼번에 모일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본영화의 저력이다. 모두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내는데, 나는 특히 <귀신이 온다>와 최근작 <유레루>에 나왔던 카가와 테라유키의 연기에 또 한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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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리에라는 이름을 첨 극장에서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요. 그 아가 그 이쁘던 그 아 맞나 하구 말입니다^^
여전히 군계일학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