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
남재일 지음
도서출판 강
후배에게 빌려준 이 책을 반년이 다 돼 돌려 받았다. 돌려 받기라도 해서 다행이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대학원에서 문화연구와 저널리즘을 전공한 지은이는 그 스스로가 말했듯, 자신의 체중을 실어 주체를 드러내며 말하며, 욕망의 개입으로 거짓으로 흐를 수 있다는 성찰적 자의식에 입각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수 십 편의 영화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동시대를 관통하는 욕망과 집단 무의식의 정체를 공부가 깊은 자만이 할 수 있는 혜안으로 헤쳐 모여 시키고 있다. 어쭙잖게 영화 글쓰기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있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 책이다. 그러나 책은 내 직업적 한계에 대해서도 눈에 번쩍 뜨일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뻔뻔하게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먹고 사는 데 대한 죄책감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었다.
기자들이 전문성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실 지식의 전문성이 아니라 업무의 숙련도에 가깝다. 기자의 선발 및 평가 시스템도 다른 전문직에 비해 평가자의 자의성이 개입할 소지가 높기 때문에 경영진에 종속될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전문성 부족이 기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 기자가 담당하는 영역을 현대 분과 학문의 전공 영역과 대응시키면 적어도 십수개의 전공 영역에 해당한다. 기자는 이 넓은 영역에 대해 매체의 독점적 사용권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대가로 전문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위의 정의대로라면, 경영진에 종속되지 않은 기자를 기자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매체 환경이 급변하면서 1인 미디어 또는 소수 미디어 실험이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다. 나도 7월부터 지금의 매체를 떠나 그 대열에 끼게 될 예정이다. 해서 고민이다. 나를 여전히 영화 기자라 자칭하는 것이 가능할까?(이미 조선일보 출신 이동진 기자가 있지만 그의 사례가 곧 관행은 아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이건 너무 애매하고 모호하다. 혹은 독립적 영화 저널리스트? 이건 또 너무 길고 구차하다. 영화 평론가? 앞서도 말했듯 나는 평론가를 자칭할만큼 전문적이지 못하다.
방문자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 참고 사항, 나는 앞으로도 블로그에다 박스오피스 기사를 쓰게 될 것이며, 시사회 후기를 쓸 것이며, 영화인들을 만나 인터뷰도 할 것이다. 방송에 출연해 새 영화를 비평적으로 소개하는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영화 바깥의 세상 일도 기웃거리며 나름대로의 논평도 늘어 놓을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단순하고 치명적인 사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나의 체중을 실어 주체를 드러내며 말하려 노력할 것이며, 그러한 노래조차 언제나 욕망의 개입으로 거짓으로 흐를 수 있다는 성찰적 자의식을 가지려 애를 쓸 것이다. 이런 나는 앞으로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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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변화가 있을거라는 말에 앗 그럼 당분간 글을 못 보는 건가,라고 생각하다가 마지막 문단을 보며 안심중입니다. 어쩌면 더 다양한 글을 볼 수 있을 것 같은걸요. 어떻게 불리든 제가 알 수 있는 건 '최광희'님의 글은 지금과 같이 혹은 지금보다 더 영화와 사람과 세상 일에 관해서 '체중'을 힘껏 실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 거라는 것입니다. 글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앞의 세 가지(박스오피스 기사, 시사회후기, 인터뷰기사)만으로도 벌써 '영화기자'로는 아무 문제가 없으신데요 뭐. 오히려 그런 문제보단 기자가 할 수 있는 일 + 더 많은 일들을 하시게(쓰시게) 될 것 같아서 그걸 다 포괄하는 단어가 필요할듯 보이는걸요. 그러나 어찌되었건 최광희님의 글을 계속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저는 만족중입니다. 이런, 결국 아무런 해답도 드리지 못하고 말았네요. (영화칼럼니스트도 별 무리는 없어보입니다만^^)
제 글을 그리 애껴주시니 감읍입니다.^^ 시진이 님의 제안대로 그걸 다 포괄하는 단어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영화)저널리스트'를 자칭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으로선 소속감의 짐을 벗어던지고 한결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더 좋은 글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네요. 어쨌든 '저널'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도요. 감사합니다.
벌써 내일이 7월이네요. (이러다보면 더운 여름도 휙휙 지나가겠지요-!) 무슨 일을 하건 오히려 가볍고 자유로워지면 훨씬 더 진지한 무언가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있을 변화와 '저널리스트' 최광희 님의 글들이 기다려집니다.
참, <두번째 사랑>이 남성분들에게는 대부분 (저와는 다르게) 조금 '불쾌'하게 와닿았나보더라고요. 올라오는 글이나 댓글이나 여기저기 반응들이 조금.. 물론 그럴 만도 하지요. '자기' 중심에서 생각해보자면... 그래서 더욱 그때 쓰셨던 시사 후기가 저한테는 더 빛이 나 보입니다. 다시 읽어보려고 들렀어요.^^
<두번째 사랑>의 어떤 부분이 일부 남성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소피가 남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혼외 정사를 하는 모순된 상황, 그리고 남자가 몸을 파는 역전된 권력 관계 때문일까요? 혹은 결국 임신한 아이를 통해 자아를 확보한 소피의, 반가부장제적 선택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거라면, 그 분들의 불쾌감은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실존에 대해서 한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스스로의 한계를 증명해 보이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려니...개의치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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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살짝 고민이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정체성과는 별도로 다른 이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저의 정체성까지 함께 좀더 숙고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칼럼니스트라는 말이 너무 평범한 것만 빼고는 잘 맞는듯 한데요? 그나저나 필름2.0을 떠나시는가 보군요. 계속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사실 제가 진짜 쓰고 싶은 호칭은, '영향력보다 진정성을 추구하는 자유 독립 영화 저널리스트'입니다.^^ 근데 진짜로 그렇게 쓰면 먹고 살기 힘들겠죠?ㅎㅎㅎ 고민을 더 해보겠습니다. 관심과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최기자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