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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 소개를 보니, 올해 크리스마스에 볼 두 편의 영화로 할리우드산 액션 어드벤처 <박물관이 살아 있다>와 춤추는 펭귄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를 추천해 놓았다. '크리스마스=가족'이란 등식이 정착된 지 오래이니 일견 지당하신 추천 리스트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등식을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사랑'이라는 더 위대하고 더 숭고한 등식이다.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 때는 유흥가 주변 숙박업소들의 방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 됐다. 이때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에로스 수요가 공급을 따라잡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는 시장 논리에 따른 것이니, 매우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영화도 분위기 돋우기에 적당한 장르들이 인기를 얻는다. 로맨틱 코미디 말이다.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로 시동 걸고, 여관으로 직행! 에로스가 울끈불끈 솟는 젊은이들에겐 더 없이 행복한 크리스마스 코스가 아닐 수 없다.
크리스마스에 누려야 할 사랑이 비단 남녀간의 사랑만은 아닐터.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인류애적 사랑이야 말로 크리스마스 명절을 기념하여 되새기는 본질이다. 그래서 구세군이 빨간 냄비를 들고 나와 거리에서 종을 울린다. 춥고 굶주린 이웃들이 없는지 돌아보고, 더 큰 사랑을 실천하자는 거다. 한마디로 타자화한 이웃들, 이 사회의 루저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는 것이야말로 크리스마스 정신에 가장 부합되는 실천적 강령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의 현상적, 본질적 개념을 곱씹어 본다면, 앞서 두 편의 강추 영화 리스트는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족끼리 모여 희희낙락하는 것이 대관절 크리스마스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가족영화로 치면 추석 때도 신물나게 쏟아져 나오지 않냔 말이다. 하물며 가족 이기주의가 유사 이래 최고치로 올라간 이 시대에, 한번쯤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 세상을 두루 살피는 것도 필요한 미덕이다. 크리스마스에는 더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최근 본 두 편의 영화는 크리스마스 스피릿에 더없이 적합한 작품들이었다. 두 편 모두 그냥 강추가 아니라 강강강강추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감동을 선사해줬다. 다름 아닌 <숏 버스>와 <미스 리틀 선샤인>이다.
<숏버스>는 언론 시사회를 통해 봤다. 참고로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개봉 못할 공산이 크다. 보나마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화제 아니면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전무하다는 얘기다. 기자의 특권은 바로 이럴 때 행복으로 다가온다.^^ 남들이 못보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특권 말이다. (잘난 척 하지 말라고? '어둠의 경로'에 익숙한 분들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좋다! 그렇게라도 볼 수 있다면 꼭 챙겨 보시라!)
아무튼 <숏버스>는 <헤드윅>으로 잘 알려진 존 카메론 미첼이라는 감독이 얼마나 천재적으로 엉큼한 녀석인지를 십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섹스에 대한 작품이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는 아니다. 성기가 거리낌 없이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은 실제 성행위를 펼쳐 보이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성적 흥분을 느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숏버스>는 남녀 관계의 절대 변수로써의 섹스를 관찰하며 우리가 섹스에 대해 갖고 있는 강박과 고정 관념들을 풀어 헤쳐 보인다. 이를테면 섹스의 목적은 오르가즘인가? 섹스 상황에서는 꼭 두 사람만 참여해야 하는가? 섹스는 왜 관계의 틀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인가? 등등.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럼 뭐냔 말인가. 프리 섹스를 하란 말인가? 글쎄. 그건 영화를 본 당신이 판단할 몫이다. 어쨌든 무엇보다 선명하게 남는 메시지는 이거다. 전쟁보다는 섹스가 천만배는 낫다는 것이다. 사랑이 전제되든, 그렇지 않든 되지도 않는 대의명분으로 파괴를 일삼을 거면 차라리 쾌락에 탐닉하라는 얘기다.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라는 얘기다. 이 얼마나 크리스마스 정신에 꼭 부합하는 영화란 말인가.
<미스 리틀 선샤인>은 이미 개봉해서 극장 가서 봤다. 이 좋은 영화가 CGV 인디 전영관에서만 상영되고 있는 것도 씁쓸한데, 명색이 대목인데 객석의 반도 못채우고 있는 걸 보고는 또 한번 땅을 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이렇게 골방에서 영화 깨나 본다는 사람들끼리 보고 잊혀질 작품은 아니다. 올해 내가 본 미국영화 가운데, <시리아나>와 <굿나잇 앤 굿럭> 등과 함께 단연 세 손가락 안에 들 작품이었다. 웃다가 울다가, 별의별 뻘 짓을 다하고 나왔다. 미국영화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런 작은 영화에서 나온다. 많은 부분 한심한 할리우드일지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들의 미덕이 있다면 바로 이런 영화에 시장의 한 켠이라도 열어준다는 것이다. 뒷마당에 재능의 샘물을 파 놓을 줄 안다는 것이다.
내용? 영화 정보 검색해 보시고, 의미? 평론들 뒤적여 보시라. 입 아프게 여기에서까지 그 따위 얘기 하고 싶지는 않고, 암튼 앞서 언급한대로 루저들을 보듬는 크리스마스 스피릿에 또 한번 제대로 부합하는 영화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식상한 표현 한번 쓰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혹시라도 이 영화가 지루하다면, 영화 욕하지 말고 당신의 메마른 감성을 탓하시라.
크리스마스에는 정말 이런 영화가 돼야 한다. 제발이지 크리스마스에는 <중천>과 같은 돈잔치 영화 뿐 아니라 이런 영화도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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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film 2.0 에서 중천이 그닥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글로 올리지 않으셨나요? 개인적으로 저도 중천류의 아리송한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돈잔치라고 단호히 거론하기엔 좀 반발이 드는군요.-.-;; 물론 심지어 된 것도 아니니.
<중천> 하나만 놓고 보면야 그 성과와 문제점에 대해 따로 해야 할 말이 많을 겁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문맥상 매우 작은 규모로 상영된 <미스 리틀 선샤인>이 대규모 한국영화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현상을 강조하기 위해 그같은 표현을 썼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FILM2.0 공간을 통해 <중천>이 흥행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중천>은 흥행이 안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암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 역시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고 웃다가 울다가 나왔습니다.
이런 영화가 골방에서 영화 깨나 보는 사람들만 보고 잊혀질 영화가 아니며 할리우드의 저력이라는 견해에 십분 동의합니다.
정말 최고였죠. 올리브가 무대에 서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과 울음을.. 대체 어찌 설명해야할지요. 살 날도 많이 남았는데 이런 엑스터시를 또 언제 경험할 수 있을지... 너무 행복했죠. 영화를 보는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