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죠. 배우 인생이야말로 진짜 새옹지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한방에 뜨고 한방에 지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겠죠. 영화 한편에 대스타가 됐다가, 또 한편의 흥행 참패로 사정없이 추락하고 마는 게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생리라지만, 요즘은 그 부침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배우들의 티켓 파워라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요즘엔 배우들의 연기력도 심심찮게 언론이나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르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게다가 CF 출연 횟수가 많은 배우들일수록 평가의 잣대는 더 까다로워집니다. 대중들의 인기에 힘입어 돈을 벌었으면 훌륭한 연기로 보답하라는 주문이겠죠.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인 셈입니다. 참 배우 하기 힘들어진 세상입니다.
강동원, 다층적 매력으로 어필
자, 그렇다면 지난 한해 동안 행운의 한방을 얻게 된 배우들은 누가 있을까요? 저는 왠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강동원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사형수로 등장한 이 영화에서 강동원은 이나영에 감정이입된 숱한 누님들의 심금을 제대로 울리는 데 성공합니다. 한해 전 <형사 듀얼리스트>로 흥행 참패라는 쓴 맛을 보긴 했지만 영화 연기에 임하는 그의 진지한 자세와 소년같은 외모가 주는 다층적인 매력은 그가 장동건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예측에 설득력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여배우 가운데서 고른다면 단연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이죠. 여성의 외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태도를 비꼬는 영화의 풍자적 쾌감과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며 김아중은 시쳇말로 제대로 떴습니다. 어쨌든 그녀를 통해 우리는 또 한번 이런 씁쓸한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사람들은 추녀가 예뻐지는 것보다 미녀가 망가지는 걸 더 좋아한다는 것이죠.
미녀가 망가지면 인기를 얻는다
망가진 미녀라는 면에서 또 한명 빼 놓을 수 없는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한해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냈을 게 틀림 없는 배우 현영입니다. <조폭 마누라 3>에서 엉뚱한 연변 출신 통역사 역할을 맡아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데 이어 <최강 로맨스>라는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주연을 맡을 정도로, 현영은 요즘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뜨고 있는 중입니다. 8등신 외모에 비음 강한 목소리, 여기에 약간의 푼수끼가 더해져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현영 역시, 망가진 미녀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와 맞물리며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만큼은 뜬 배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혜수, 축적된 연기 내공을 입증
그런가 하면 감춰진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일거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배우들도 있었습니다. <타짜>의 김혜수가 대표적입니다. 이른바 팜므 파탈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운 정마담 역할을 통해 김혜수는 그동안의 영화 연기를 통해 축적된 내공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입증해 보이고 말았던 것이죠. 어쨌든 지금까지 김혜수를 귀엽고 상냥한 역할로만 캐스팅했던 r감독들은 그녀에게 뒷통수를 제대로 세게 얻어 맞은 셈입니다.
임수정, 웃음과 연민의 사이코 연기로 극찬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은, 제가 만일 영화상 심사위원이라면 두 말 않고 여우주연상을 줄 것 같습니다.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끌어내는 그녀의 싸이코 연기는 단연 최고였다는 평가가 과장은 아닙니다.
문근영, 진통의 성인 신고식
어쩌다 보니까 뜬 배우 얘기만 하고 있는데요. 자, 그렇다면 한방에 간 배우들은 누굴까요? 갔다는 표현은 좀 너무하고, 적어도 이건 아니다 싶게 만든 배우들도 없지 않았죠. 대표적인 배우, 바로 문근영입니다. <사랑따윈 필요 없어>를 통해 치른 그녀의 첫 성인 연기 신고식은 영화의 참패로 그다지 유쾌하지 않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요즘엔 성인 이미지를 한껏 과시하며 출연한 CF마저 표절 의혹에 시달리며 구설수에 오르고 있죠. 어른이 됐지만 키덜트 나라에 갇혀 있는 문근영, 어느덧 대중의 뇌리에서 순식간에 잊혀지고 있는 장나라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김태희, CF 이미지를 뛰어 넘는 연기력 보여주지 못해
<중천>의 김태희는 영화의 성패 여부를 떠나 연기력 그 자체만으로 구설수에 오른 대표적인 케이습니다. 그녀의 단순한 표정 연기와 어설픈 발성, 경직된 몸놀림은 숱한 이동통신 CF를 통해 그녀의 이미지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즉각적인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김태희와 함께 출연한 정우성 역시 <새드무비>에 이어 야심찬 출연작 <중천>마저 관객들로부터 외면 당하면서 입지가 많이 약화된 것 같습니다. <올드보이>로 새로운 연기 세계를 보여줘던 유지태 역시 지난해 <야수>에 이어 <가을로>에 잇따라 출연하긴 했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아파트>에 이어서 <언니가 간다>에 잇따라 출연한 고소영에 대해선 따로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앞서 말씀드린대로 배우 인생 새옹지맙니다. 여전히 이들 앞에 서광을 비쳐줄 한방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죠. 그러나 배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영화 예술과 연기에 대한 진정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객들은 귀신처럼 그걸 알아봅니다. 아무쪼록 관객들의 열광과 지지에 CF 출연 편수 증가와 출연료 인상이 아닌, 향상된 연기력으로 화답하는 배우들이 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필자가 진행하는 FILM2.0 동영상 프로그램 '곱씹어보자'의 원고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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