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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나름대로 결산] 흥행 추이로 관객을 비평한다

기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2007/01/01 12:56
내 나름대로 2006년을 결산해 봤다. 연말을 맞아 영화들을 줄 세우거나 헤쳐 모여 시키는 건 여기저기서 하는 일들이니 여기선 영화들의 흥행 추이들을 통해 관객들의 성향을 추론해 봤다. 영화가 변하듯, 관객도 변하는 법. 게다가 관객은 영화 예술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만큼 그들의 성향 변화를 짚고 넘어가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믿는다. 내게 2006년 관객들의 표정은 아래와 같이 보였다. 물론 미디어와의 작용 반작용에 의해 걸러진, 일종의 스케치에 불과하지만.

2006년의 관객들은 여전히 공동체의 상처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각각 1230만, 13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왕의 남자>와 <괴물>이 그 증빙이다. 두 영화의 흥행을 두고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와 다른 차원에서 보는시각도 없지 않지만, 나는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왕의 남자>는 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로 올라갔지만, 권력의 속성이라는 현재적 의미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학습 효과가 높았던 연산조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성을 획득했고, <괴물>은 장르를 통해 이 땅의 모순을 건져 올림으로써, 식민지적 현대사가 심어 놓은 한국인의 역사적 무의식을 깨웠다. 여전히 한국사(史)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상처이고, 그러므로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원천이다. 반면, 역사적 상처를 공격적 프로파간다로 활용한 <한반도>같은 영화가 배급과 마케팅 물량을 앞세우며 관객 몰이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냉대를 받았다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이 부분에서만큼, 나는 한국 관객의 선구안이 존경스럽다.

이야기가 흐트러지면, 나쁜 영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대표적으로 <다세포 소녀>다. 이재용 감독은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파괴하고 원작 만화에서 취한 여러 에피소드를 각색, 나열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그같은 방식은 환영받지 못했다. 연말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역시 마찬가지. 표면적으로 보면 극히 관습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이야기를 쫓아가고 있지만,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일부 비관습적인 연출 호흡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서적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비관습적인 연출 호흡이라 한다면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도 마찬가지였는데, 유독 이번 영화에 그 부분이 걸렸다는 것은 흥미롭다. 어쨌든 적지 않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어긋나 버리면 혼동을 일으키고, 그 혼동은 영화에 대한 반발을 야기한다는 것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재차 입증해 보였다. 이 말을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면 이렇다. 권력자(=관객=소비자)의 기호에 어긋난 시종(영화=상품)에겐 즉각적인 형벌(=악플 달기, 평점 1점 주기)이 가해진다. 영악한 언론은 이 과정을 생중계함으로서, 관객의 실체 없는 권력화에 가상의 권위를 부여한다. 관객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영화에 대해 가졌던 악의에 이유 있음이라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관객들은 평론보다 광고를 더 신뢰한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제 평론에 대한 가벼운 냉소는,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저널 평론이 대중의 관심을 가로채지 못하는 데는 평론 자체가 현학적으로 흐른 탓도 크지만, 무차별적인 광고의 홍수 속에 평론의 역할이 축소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적 방법론이 횡행한 담론 시장에서는 '볼만 하냐, 그렇지 않는냐'라는 쇼핑호스트적인 이분법을 평론가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만약 어떤 평론이 그 태도에서 벗어날 경우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평론도 하나의 문학 장르의 하나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 그런 비판은 소설가나 시인에게 당신 작품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어쨌든 상징화한 대중 권력을 조장하는 한편, 평론의 시니컬리즘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 영화 자본에겐 광고 이미지를 통한 관객 통제가 더욱 수월해졌다. 그 결과, 마케팅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장된 기대감을 주체적 기대로 받아 들인 소비자들이, 막상 영화를 통해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영화 자체를 평가 절하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이어졌다. '낚시 마케팅'이라는 비난을 들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영화 마케팅과 관객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2006년 가장 주목할만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관객들의 선택은 '항상 참'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시간>을 내놓은 김기덕 감독이 '관객들의 수준'이라는 말을 입밖에 냈다가 일부 (혁명적인) 누리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소비자는 자본에 의해 상징 조작된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조작이 반복될 수록 스스로 그 권력화를 내재화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말만이 아니라 정말 손님은 왕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기시되는 것이 관객들의 선택이나 경향성에 어떤 가치적 언급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문의 영광> 시리즈 같은 영화들이 양산되는 데 대해 한국영화의 수준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아도, 그런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지게끔 하는 저변, 즉 한국 관객들의 수준을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 관객은 이미 상징 권력의 성역 안에 있기 때문에, 어떠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대중 문화 지평 내에서는 수용자에 대해서만큼 비판적 담론이 설 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관객들은 스타파워에 좌우되지 않지만 아주 의연하지도 않다.
문근영이 출연한 <사랑 따윈 필요 없어>나 정우성 주연의 <중천>같은 영화가 흥행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반면, 이렇다할 스타가 없었던 <왕의 남자>가 대 히트를 기록한 것을 두고, 이제 스타 파워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영화 유통 국면에서 스타들이 차지하는 이른바 티켓 파워의 비중이 투자 유치 단계보다 덜한 사례가 경향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스타들에 대한 지지가 '연기력'이라는 적절한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대신, 그들의 광고 출연료를 부풀려 주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대중의 배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스타 모시기에 혈안이 된 제작자들이 매니지먼트의 엄청난 개런티 요구와 '묶음 캐스팅'에 지나치게 관대해진 나머지 독창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관대해진 것이 양측 모두에게 패착으로 귀결된 사례가 많아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정교할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숙명적으로 스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스타 파워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새롭게 업데이트된 스타들의 이미지는 끊임 없이 매니지먼트사와 결탁한 미디어에 의해 제시되고, 대중은 그 이미지에 적응되며 동시에 훈련되는 구조 자체를 견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스타들에 대한 관객들의 태도는 언제나 '식은 열광'과 '새로운 열광' 사이에서 조율될 뿐이다. 이 말은 스타가 존재하지 않는 걸작이 대중적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족
허점이 많은 글이지만, 새해 첫날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아 급하게 정리했습니다. 혹시 이 글에 대한 님들의 의견이나 반론이 이어진다면 조금 더 풍성하고 깊은 이야기로 발전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글을 눈 딱 감고 그냥 올립니다.  
TAG 2006년 결산, 영화,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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